알리바바, 최악의 시기를 겪다

 

알리바바에게 2001년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닷컴열풍에 힘입어 일본 IT업계 거물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200억원을 투자받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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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키피디아)

 

차세대 이커머스 주자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마윈의 어설픈 경영판단은

모든 것을 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용자 확충을 모색하는 동시에

글로벌 비즈니스 인프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성공에 허파 바람 찬 창업자 마냥

 

사무실을 좋은 곳으로 옮겼고

수많은 해외지사를 세웠으며

고스펙 인재를 대거 뽑았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이것은 수익성 및 재무상태 악화로 이어졌죠.

 

알리바바는 어쩔 수 없이

고강도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볼까요?

 

(사진=블룸버그, '추락하는 알리바바의 양탄자')

(사진=블룸버그, ‘추락하는 알리바바의 양탄자’)

 

이와 관련해 마케팅 총괄이었던 포터 에리스만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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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은 늘 자신감에 넘쳤어요.

하지만 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욕해요.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내가 나쁜 일을 한 게 맞나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대답했지만

그의 멘탈이 무너진다면 누가

조직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걱정했죠”

 

숨고르기에 성공하지만..

 

알리바바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입점기업 대상으로

오프라인 전시회 참가료 및 입점료를

받기로 결정했죠.

 

다행히 비즈니스는 안착해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운영비를 막기에는 버거웠습니다.

 

적자는 계속 누적됐죠.

 

알리바바 경영진은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습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C2C 오픈마켓이었는데..

 

준비를 슬슬 하려는 찰나

불길한 소식이 하나 들려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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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베이가 중국 C2C 분야

선두업체인 이치넷의 지분 33%를

300억원에 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마윈은 이베이가 이를 교두보로 삼아

중국시장에 직접 진출하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됐죠.

 

바다상어, 중국해안에 들어서다

 

알리바바가 준비한 C2C 오픈마켓은

2003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타오바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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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서 헷갈릴 수 있는데요.

 

알리바바가 회사 이름이자

기업간 거래(B2B)용 사이트라면

타오바오는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이자

이용자간 거래(C2C)용 사이트입니다.

 

아무튼 이때 이베이가 중대사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치넷의 남은 지분 전부를

15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당시 이베이는 입지전적 여성 CEO,

맥 휘트먼의 지휘 아래

파죽지세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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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키피디아)

 

맥 휘트먼은 마케팅 전문가로서 오랜 기간 활동하다

1998년 이베이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돼

2008년까지 10년 넘게 회사를 이끌었는데요. 

 

직원 30명짜리 회사를

매출 9조2000억원짜리 회사로 키운

그야말로 신화적 존재였죠. 

 

특히 이베이가 중국에 들어갔을 때는

결제업체 페이팔을 무려

1조5000억원으로 인수하고

전세계 지사를 마구 세울 때입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 국내 오픈마켓 옥션도

이베이에 인수됐죠.

 

이미 시장점유율 70~80%를 유지하던 이치넷과

야심이 어디까지인지 감 잡을 수 없는

맥 휘트먼의 이베이가 합쳐진다면? 

 

(바로 이런 싸움이라는 거죠)

(이런 싸움이라는 거죠)

 

너무도 이기기 어려운 싸움

 

알리바바가 가진 돈은

백억원도 채 되지 않았고

대내외 위기가 계속 발생했습니다.

 

먼저 중국 본사에 전염병 사스(SARS)가 돌아

 

(사진=뉴스위크)

(사진=뉴스위크)

 

타오바오팀 직원 상당수가

출근을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마케팅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베이가 한 발 앞서

중국 내 대형 포털사이트와 계약을 했고

여기에는 동종업체와 광고수주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누구 봐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실제 이베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라지브 두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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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업은 미국을 능가하는

엄청난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우리는 헤드스타트(경기초반 유리함)를 했다”

 

밝힐 정도였으니까요.

 

양쯔강 악어, 바다상어를 유인하다

 

이렇게 위기가 가중되는 가운데

경영자로서 마윈의 포텐(잠재력)이 터집니다.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봤고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고민했죠.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결국 심플하게 가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적의 약점을 물어뜯는 전략을 사용하기로!

 

그렇다면 알리바바의 강점은 무엇일까.

 

수년간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면서

기존 고객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현지 이용자들의 정서를 잘 안다는 것이죠.

 

그래서 타오바오의 서비스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 사후관리까지

철저히 중국인 취향에 맞추기로 했습니다.

 

(사진=알리바바)

(사진=타오바오)

 

마케팅 또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고

 

대형 포털 대신 중소사이트에 광고를 했고

테마곡과 같은 문화 콘텐츠 마케팅,

자체 사이트 이벤트 프로모션 등으로

바이럴(입소문 확산)을 모색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베이의 약점을 물어뜯었죠.

 

그 약점이 무엇일까.

 

상장기업으로서 주주들이 많다는 것인데요.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습니다.

 

더구나 대규모 M&A비용을 집행한 만큼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컸죠. 

 

(쉽게 말하면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이었던 거죠)

(쉽게 말하면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이었던 거죠)

 

알리바바는 이베이의 대규모 화력전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꿰뚫어봤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맞춰

특단의 대책을 발표하기 이르죠.

 

3년간 무료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

 

물론 이베이도 스스로 약점을

모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중국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선

장기간 투자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수천억원의 돈이 들어간 상황에서

타오바오처럼 무료화 정책을 시행하기란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유료화 전략을 채택하죠.

 

양쯔강악어, 바다상어의 목덜미를 물다

 

시간이 지날수록 판세는

타오바오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친숙한 서비스에

이용자들은 금방 적응했고

 

소소한 마케팅에

대중들은 열광했으며

 

무료정책에 입점업체들은 동요했죠.

 

분위기는 숫자로 바로 반영됐습니다.

 

(사진=아웃스탠딩, 자료=언론보도 종합)

(사진=아웃스탠딩, 자료=언론보도 종합)

 

2003년 이베이와 타오바오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72%, 7%였지만

 

2004년에는 64%, 25%이 됐고

2005년에는 36%, 58%로 역전됐으니까요.

 

이에 마윈은 득의양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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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이가 바다상어라면 

알리바바는 양쯔강악어다. 

해외라면 몰라도 중국에서는 우리가 이긴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베이 실적발표 시기에 맞춰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죠.

 

바로 무료화 정책을 3년 더 연장한다는 것!

 

당연히 언론과 애널리스트들은

이베이 경영진에게 어떻게 대응하겠느냐 물었고

 

순진한 이베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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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화 정책은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이렇게 답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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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낚인 거죠.

상황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당황한 이베이측은 

중국시장에 1000억원을

더 투자하기로 결정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2006년 29%, 60%로 격차가 더 벌어졌고

2007년 7%, 83%가 됐으니까요.

 

결국 이베이는 중국시장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수천억원의 돈만 날린 채..

 

글로벌기업의 공세? 홈 어드벤티지를 파악하라!

 

알리바바와 이베이의 격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어떻게 다윗이 이길 수 있는지

 

토종기업과 글로벌기업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토종기업이 이길 수 있는지

알려주는 모범사례입니다.

 

현 IT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기업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딜리버리히어로,

라이엇게임즈, 슈퍼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기업의 약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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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CEO 및 기획자들은 머리 터지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구체화하긴 힘들지만

 

(사진=위키피디아, 양쯔강악어)

(사진=위키피디아, 양쯔강악어)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물어뜯어라”

 

이 공식이 어느 정도 문제해결의

영감과 힌트를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전쟁에서 지면 죽는 것,

 

합법 테두리 안에서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말이죠.

 

알리바바의 타오바오 무료화 전략은

매출 발생시점을 엄청 뒤로 미룬 것이고

생태계를 망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해외 거대자본의 가장 큰 취약점, 

시간이 얼마 없으며 한 국가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을

제대로 공격했고 결국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탁월한 전략 외

하나 더 언급할 게 있다면

대내외 파트너들의 강고한 신뢰입니다.

 

최악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초기멤버들은 거의 나가지 않고 회사를 지켰습니다.  

 

(초창기 알리바바 회의모습, 마치 전도집회 같다. 사진=알리바바)

(초창기 알리바바 회의모습, 마치 전도집회 같다. 사진=알리바바)

 

창업자에 대한 신뢰감,

회사에 대한 애정 때문이죠.

 

이때 마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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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졌을 때 돌아보니

비싼 돈 주고 데려온

엘리트 군인들은 다 죽어있고

팔로군만이 옆에 있더라”

 

*팔로군

 

국공내전 시 중국 공산당 주력부대

 

이렇게 회상하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가

외부 투자자 손정의 회장인데요.

 

아마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해안됨

“돈이 거의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무료화 정책을 고수할 수 있었지?”

 

바로 소프트뱅크가 이베이와의 격전 당시

800억원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손 회장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서

마윈과 알리바바를 믿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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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키피디아)

 

어쩌면 기업의 성패는

사업전략과 수익모델이 아닌

조직문화가 전부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해당 포스팅은 과거기사로서

2015년 5월20일 발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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