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셀러브리티
빅뱅 막내에서 유망한 청년사업가로, 위대한 승츠비!
빅뱅은 YG엔터테인먼트가 처음으로 기획한 아이돌그룹이었습니다. 양현석 대표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모든 과정에 개입, 관여했는데요. 마침내 최종 멤버선정만이 남았습니다. 양현석 대표는 순차적으로 결과를 발표했죠. 일단 초등학교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고 힙합듀오로 데뷔를 검토했던 지드래곤과 태양은 합격! 서글서글한 인상과 빠른 발전속도로 모든 스탭이 지지표를 보낸 대성도 합격! 강렬한 외모와 독특한 랩 보이스를 지닌 탑도 합격! 광주 출신의 어린 춤꾼인 승리와 미소년 페이스를 가진 현승만이 남은 상황. 양현석은 솔직히 둘 다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KBS 공채 개그맨 -> 20만 구독자 유튜버, 무엇이 달라졌나
김대범씨는 개그맨 출신 유튜버입니다. 많은 예능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어렸을 적부터 남 웃기길 좋아했고 뭔가 괴짜스러운 구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방송쪽으로 진로를 잡고 황현희, 안상태와 오장육부라는 팀을 결성했는데요. 3년간 거리 공연, 소극장 공연을 반복하며 방송사 개그맨 시험을 봤습니다. 그 결과는? 3명 모두 어마어마한 경쟁을 뚫고 KBS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자질과 실력 모두 좋았던 것이죠. 더 나아가 운도 좋았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한창 <개그콘서트>가 뜨거운 인기를 모았을 때고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할 수 있었거든요! 참고로 김대범씨가 속한 공채 19기는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 강유미, 안영미, 홍인규, 황현희, 안상태 등 기라성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요. 유재석, 김국진,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이 속한 공채 7기와 더불어 KBS 황금기수로 꼽힙니다. 여기서도 김대범씨는 기획력을 앞세워 꽤 선전했습니다. <춤추는대수사선>, <LA쓰리랑>, <도움상회>, <리플중계석>, <제3세계>, <방송과의전쟁>을 히트시켰고 출연작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직접 냈죠. 그리고 마침내 <마빡이>를 통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는 데 성공! KBS 연예대상 우수상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상민이 구체적으로 69억원 채무자가 된 사연
이상민은 스스로 사업가 기질을 룰라 2집 타이틀곡을 선정했을 때 처음 알았다고 합니다. 김건모 '잘못된 만남', R.ef '이별공식' 등 BPM(반주속도) 높은 댄스곡이 주류인 상황에서 레게힙합풍이었던 '날개 잃은 천사'를 밀었는데요. 댄스음악보다 힙합음악이 트렌드상 앞서 있고 혼성그룹 특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실제 2집은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 룰라가 1990년대 최고의 그룹으로 우뚝 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상민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후 룰라가 표절 및 멤버이탈 등 일련의 사태를 겪고 해체수순을 밟자 연예기획사 '상마인드'를 설립한 뒤 본격적으로 음반제작자의 길을 걸었는데요. 그의 행보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승승장구'였습니다. 기획하는 것마다 대박을 쳤죠. 1. 왠지 개그맨스러운 가수 두 명이 모여 코믹댄스를 한다면 대박을 낼 것 같다. -> 컨추리꼬꼬 2. 해외에서 인디아풍 클럽음악이 떠오르니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황보를 주축으로 팀을 만들어보자. -> 샤크라 3. 보이시한 매력의 채리나를 정점으로 걸스힙합을 구현해보자.
"용꼬리는 승천해도 뱀머리는 땅을 기는 법"..스눕독의 롱런비결
힙합음악이 1990년대 빌보드차트를 점령한 이래 수많은 랩스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봤을 때 대부분 반짝인기를 끄는 데 그쳤을 뿐 롱런하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라는 점에서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랫동안 ‘핫함’을 유지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요. 대표적으로 제이지, 에미넴, 릴웨인 정도를 꼽을 수 있겠고요. 오늘의 주인공인 스눕독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스눕독이 세 명의 랩스타와 다른 점은 자신만의 크루를 조직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이른바 리더, 대표자로서 면모보다는 당대 최고 뮤지션과 협업하고 당대 최신 트렌드에 올라타는 팔로워, 보완자로서 면모를 보였다는 겁니다. 좋게 말하면 처신에 능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인 거죠. 그의 음악인생을 대표곡으로 정리해보자면 정말로 그러합니다. 1. Nuthin' but a 'G' Thang (닥터드레) https://www.youtube.com/watch?v=_qkP8SvHvaU 스눕독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1991년 서부힙합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닥터드레에게 픽업됐습니다.
만약 '지드래곤'이 직접 기획사를 차린다면?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 키이스트,FNC엔터테인먼트, BH엔터테인먼트 등이름바 메이저라 불리는 기획사를 보면창업자가 모두 연예인입니다. 왜 전문경영인이나일반사업가가 아닌 연예인이일까. 첫 번째로 철저히 엔터테인먼트는사람 비즈니스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성공시키기까지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인적 네트워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걸 시니어 연예인이 해줄 수 있죠. 두 번째로 규모감 있는 자본을 대는 데유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일반인보단 재력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성공을 맛본 연예인 중 일부는이런저런 이유로 기획사를 모색합니다. 더 많은 수익배분을 가져가기 위해, 활동의 독립성과 영속성을 보장받기 위해,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로 들어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뛰기 위해. 따라서 연예인 사이 창업열풍은 시니어에서 주니어로 확산되는 모양새인데요.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볼까요? 현재 이 시점에서창업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연예인은 누굴까. 저는 지드래곤을 뽑고 싶습니다.
조세호와 양세형, 대세가 되기까지 10년 걸린 이유
요즘 예능계 가장 핫한 연예인으로 조세호와 양세형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은 2010년 이후로 다수 공중파,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믿고 쓰는 패널'로 활약하고 있는데요. 지난해는 그야말로 두 사람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세호는 과거 <세바퀴>에서 이야기했던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대사가 온라인상에서 어마어마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우결>에서는 걸그룹 피에스타의 차오루와 이른바 가상연인으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양세형 또한 '양세바리'라는 말을 히트시키며 한껏 존재감을 뽐냈고요.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일은 국내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후속 멤버로 합류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둘은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인기상을 공동 수상할 수 있었죠. 조세호와 양세형의 과거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첫 번째로 남 웃기는 재주를 타고났다는 점! 쉽게 말해 난 놈이라는 거죠. 어렸을 적 학교나 동네에서 재치와 언변을 뽐내는 애들이 있잖아요. 둘은 이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양현석은 어떻게 인생을 바꿀 만한 기회를 얻었나
양현석이 20살 됐을 때입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나이트클럽을 누비며 이태원 손꼽히는 춤꾼으로 이름을 날렸는데요. 성인이 된 이후에는 '현실'이라는 거친 파도에 몸을 맡겨야 했습니다. 부모님과 형의 설득으로 자격증 따고 들어간 지도 제작회사. 일을 하면 할수록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고교 시절 친구들이 나와 백댄서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요. 엄청난 쇼크로 다가왔죠. 나는 죽지 못해 사는데 친구들은 당당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다니.. 양현석은 그날 바로 사표를 썼고 얼마 후 유명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프로댄서 생활은 너무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명성과 실력, 업계 인맥이 나날이 올라갔죠.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시나위'라는 록그룹에서 베이스를 쳤다는 한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바로 서태지! 양현석이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다 출 때까지 기다리더니 넌지시 다가와 말을 걸길..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신동엽 이야기
연예인의 일생은크게 네 가지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 사람들의 눈에 띄지 못해언젠가는 활동을 중단하거나 평생 빛을 보지 못함. 정말 슬픈 케이스죠. ex)연예인 95% 이상 두 번째, 데뷔 후 관심몰이에 성공했으나성과를 이어가지 못하고 반짝스타로 끝남. 정말 안타까운 케이스죠. ex)최창민, 육각수, 하늘, 찰스, LJ, 서우 세 번째, 오랫동안 무명기간을 거쳤으나어느 시점 주목을 받고 자기만의 입지를 구축. 마땅히 박수칠 만한 케이스라고 봅니다. ex)이경규, 유재석, 박명수, 김구라, 조세호 네 번째, 데뷔 후 관심몰이에 성공했고꾸준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롱런하는 데 성공.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케이스겠지만정~~~~~~~~~~~말 찾기 힘듭니다. 굳이 찾는다면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 신동엽 정도겠죠. 연예계 발을 들이자마자 스타가 됐고25년 가까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김성주 아나운서의 징글징글한 예능정글 생존기
김성주의 20대 모습은 요샛말로 '헬조선, 수많은 흙수저' 중 하나였습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 전공 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여러 차례 지상파 방송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800대 1'에 이르는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번번히 면접에서 물을 먹었죠. 그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낮춰 케이블 방송사인 '국회방송(KTV)'과 '한국스포츠TV'에서 활동을 했는데요.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첫 방송을 했을 때 국장으로부터 "대학방송 진행자도 너보단 낫겠다"는 혹독한 평가를 들어야만 했으니까요. 그는 창피한 마음에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손석희, 신동호 등 유명 아나운서를 성대모사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은 계속됐죠. 한국스포츠TV에서 캐스터로 활동할 때는 회사가 IMF 충격으로 폐업 직전 상황이 됐는데요. 경영진은 직원 대부분을 구조조정했고 인수될 때까지 버티자는 의도로 남은 직원들에게 최저생계비만을 주며 방송분량을 채우게 했습니다. 김성주는 이때 하루 3~4개씩 스포츠중계 방송을 했는데 나중에 연간 단위로 세어보니 1000개에 가까웠다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나아지지 못하자 전사원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회사 좀 살려달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려야 하는 상황까지 왔는데요.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잘하고, 잘하는 것을 해야 성공한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과거 한 언론인터뷰에서부친인 백승탁 전 충남 교육감을 두고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 모친을 만난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왜냐면 그 누구보다 까다로운 입맛을척척 맞춰줬기 때문이죠. 부친은 한번 밥을 먹더라도소문난 백반집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국 두 가지, 찌개 두 가지, 생선구이, 조림,나물 몇 가지, 젓갈 몇 가지 등이 갖춰져야숟가락을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장 흔한 요깃거리였던삶은계란만 해도 익은 듯, 익지 않은 듯반숙만을 고집했고 외식을 할 때는입맛에 맞는 중국집을 찾지 못해한참을 왔다갔다 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풍 때문인지 자식들은웬만한 미식가 못지 않은 미각을 갖추게 됐고식도락을 삶의 가장 큰 낙으로 삼게 됐죠. 이중 백종원 대표는 가장 유별났다고 하는데요. 몇 가지 일화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없었을 때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햄버거 수십개를 사서냉동실에 얼려둔 뒤 먹고 싶을 때마다 꺼냄. 그냥 먹는 게 아니라빵과 패티를 분해해서 프라이팬에 익힌 다음샐러드, 계란, 마요네즈, 캐첩을 발라새로운 형태의 햄버거 완성! *대학생 시절 수업 도중서울 외곽에 있는 맛집을 가자고 친구들을 꼬심. 그런데 도착한 곳이 강원 평창 부일식당.다들 밥 한번 먹는데 이게 뭐냐 어이없어 했다고.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있었을 때는부식으로 받은 날계란을 익혀서 먹음. 방식은 콜라캔을 째고 거기에 물을 넣은 뒤계란을 넣고 신문지를 태워 익히는 식. *군대제대 1년을 남기고 있었을 때는간부식당 관리부사관과 보직을 바꿈. 원래 인사규정상 안되는 것이지만워낙 음식솜씨와 열정이 대단해 사단장이 묵인해줬는데.. 식당을 뷔페식으로 바꾼 뒤자칫 모자랄 수 있는 식재료를대량주문과 장기보관을 통해 가격을 낮춰서 받음.
아이돌 비즈니스, 이수만이 기획하고 보아가 증명하다
혹시 '기화(奇貨)'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뜻하지 않게 찾아낸 소중한 물건,지금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시간이 지나면 높은 가치를 지니는,기이하고 독특한 상품을 말합니다. 이수만 SM엔테테인먼트 회장이처음 보아를 봤을 때바로 이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업계 최초로H.O.T, S.E.S 등 아이돌 그룹을 내놓았고이들이 전국민적 인기를 얻으면서유력 기획사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수만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죠. 소속가수들을 월드스타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은막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문화 후진국이었고해외진출, 특히 대형 음반시장인 일본과 미국에서성과를 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으나! 이수만 회장은 불가능한 꿈을 꿨고이를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먼저 해외경험 있는 S.E.S로 하여금거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가까운 일본시장을 공략했죠. 성과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노래실력도, 댄스실력도, 방송매너도,현지화전략도, 외국어실력도 모두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수만 회장은 기존 가수들이 해외로 가서바로 성과를 내긴 힘들다고 봤고아예 백지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그 프로젝트 주인공이 바로 보아! 이수만 회장은 보아와의 첫 만남을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김구라, 끊임없이 도전하고 발전하는 '문제적 방송인'
그는 스스로 활동 초창기를 가리켜'용도폐기된 방송인'이라 정의했습니다. 어렸을 적 라디오방송 진행자를 꿈꿨고입담이 좋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던 터라첫 커리어로 SBS 개그맨 공채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 하지만 영 빛을 보지 못했죠. 큰 덩치와 좋지 못한 인상 때문인지은근히 PD들은 자신을 회피하는 분위기였고서울예전 출신 방송인들이 서로 선후배하며끌어주고 당겨주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주어지는 일거리도 고작 꽁트단역에 불과. 특히 동기인 홍록기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모습을 봤을 때너무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지하철로 서울(방송국)과 인천(집)을 오가면서비정하고 불공평한 방송가를 욕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저는 안될 수 밖에 없었어요" "왜냐면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었거든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프로그램 책임 프로듀서가대기실에 와서 말하길" "지금 일이 바빠서 그러는데누가 내 차 좀 다른 곳으로 빼줄래?" "그때 저는 운전면허가 없다고 했고홍록기는 바로 자기가 하겠다고 하더군요"
장동민은 헬조선 자화상일까, 넥스트 김구라일까
여기는 KBS 희극인실. 선배 개그맨들이 막내 개그맨들을 모아 희극인으로서 교양과 상식을 가르쳐준다며 별 시덥지 않고 반갑지도 않은 집체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바탕 육체활동이 끝나고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 남았는데요. 선배들이 기수대로 하나하나씩 들어와 조언을 주는 것이죠. 어떤 선배는 철학을 이야기하고 어떤 선배는 센스를 이야기하고 어떤 선배는 노력을 이야기하고 어떤 선배는 예의를 이야기합니다. 이번에는 날카롭고 얄상하게 생긴 선배가 들어와서 말을 꺼내는데요. "야, 지금까지 내 앞에 있었던 놈들이 했던 이야기, 싹 다 잊어버려. 다 헛소리야" !!! "연예인은 교양과 상식 같은 거 필요없어. 그냥 돈 있으면 형이고, 인기 많으면 선배야" !!! "열심히 해서 무조건 떠라" !!! 그 날카롭고 얄상하게 생긴 선배가 바로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 장동민입니다. 요즘 예능계 가장 핫한 인물이죠.
한성호 FNC엔터 대표, 설현과 유재석을 가진 남자
한 가수지망생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밴드활동을 통해 착실히 내공을 쌓았고유명 작곡가 이경섭 밑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죠. 고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타이틀곡과 데뷔날짜가 정해졌거든요! 그는 녹음 등 모든 준비를 마친 뒤데뷔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죠. 그런데 어느날 작곡가가 그를 부르더니.. "미안한데 회사사정으로 데뷔날짜가조금 연기될 것 같다. 한 6개월 정도?대신 추가 지연은 없을 거고 내가 확실히 밀어줄게" "아.. 어쩔 수 없죠.좀 더 연습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런데 있잖냐. 너 타이틀곡,다른 소속사 가수에게 주면 안되냐" "거기 사장님이 하도 졸라서 거절할 수가 없더라.대신 6개월 안에 더 좋은 곡 써서 너한테 줄게" (흠.. 뭐 워낙 유명한 작곡가니까찾는 사람이 많겠지? 내가 이해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바로 그 곡이 이병헌 주연의뮤직비디오로 유명한 <투헤븐>이었고조성모는 국민 발라드스타로 거듭났습니다. 가수지망생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죠. 그래도 마음을 다 잡은 뒤 데뷔를 했고실제 회사에서도 당대 라이징스타 원빈을뮤직비디오 주연으로 섭외하는 등 나름 신경을 써줬습니다.
예능을 하지 않아도 수십억원 버는 언더뮤지션, 도끼 이야기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랩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고자 12살이 되던 해, 작은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갔는데요. 그의 집안사정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가 없어 초등학교까지만 학업을 마치고 회사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회사 사람들과 연습생 형들은 그를 도와주기는 커녕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대하기 일쑤였고 온갖 잡일을 맡겼습니다. 세상은 정말 냉혹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전혀 방패막이 되지 않았죠. 소년은 배가 고파도 먹을 게 냉수 밖에 없어서 거의 매일 도둑질을 했습니다. 컨테이너 창밖을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오는 나날의 연속이었죠. 15년이 지났습니다. 얼마 전 온라인 상에서 '도끼'라는 뮤지션 일상이 화제가 됐습니다. 20대 중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입이 10억원 이상, 사는 곳은 여의도 고층 주상복합, *참고로 얼마 전 호텔로 이사갔습니다.
"조직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박재범의 복수혈전
2009년 9월이었습니다. 국내 최정상급 보이밴드 2PM은데뷔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팀 리더 박재범이과거 한국을 비하하는 SNS 포스팅을올렸던 게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문제 삼은 것은"한국이 싫어, 게이 같애"라는 표현인데요. 지금 돌이켜봤을 때수많은 10대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감정적 불만을 털어놓은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고알게 모르게 미국교포 출신 연예인에게정서적 반감이 있는 있는 터라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이때 소속사 JYP는 바로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고논란 당사자인 박재범이 팀 탈퇴를 선언하기 이르렀죠. 당시 세간에서는박재범의 자발적 의사이기보다는JYP의 판단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 많았는데요. 실제 팬들의 격렬한 항의로여러 차례 복귀설이 돌았으나1년 뒤 소속사는 사생활 문제를 덧붙여박재범의 완전 탈퇴를 공시했습니다. 논란이 잦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해석은경영진, 팀원과의 불화가 있던 가운데SNS 비하발언이 퇴출 명분이 됐다는 겁니다.
왜 박명수는 1인자가 되지 못했을까
2000년대 중반까지방송인으로서 박명수의 입지를 평하자면‘애매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겁니다. MBC 공채개그맨으로 94년 데뷔,독특한 페이스를 무기로 주목을 받았고나름 TV CF도 찍는 등 활약을 했으나스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그냥 한번쯤 들어본 연예인에 불과했습니다. "박명수씨요? 별명이 펑크명수였어요" "왜요?" "출연자가 펑크내면누군가를 섭외해서 메꿔야 하잖아요. "그러면 만만한 박명수씨 부르는 거죠" (방송작가, MBC 무한도전中)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예능 트렌드가꽁트에서 리얼 버라이티로 바뀌면서! 박명수의 재능과 캐릭터가 빛을 발하는데요. 위악적 면모, 출연자에 대한 독설,
'주연보다 화려한 조연' 정형돈 이야기
어렸을 적 만화를 보면서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은 화려하고 행복한 모습인데그의 친구들과 그와 경쟁했던 사람들은 어떨까?"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은우주에서 가장 센 전사가 됐지만" "크리링은? 피콜로는? 베지터는?프리더는? 셀은? 마인부우는?" "<피구왕통키>의 주인공은 통키는불꽃슛을 익혀 최고의 피구선수가 됐지만" "맹태는? 타이거는? 장도끼는?민대풍은? 나한상은? 태백산은?" "과연 이들도 행복할까?" 하나의 별이 빛나기 위해서는주변이 어두워야 하고 한명의 모짜르트가 나오기 위해서는백명의 살리에르가 받쳐줘야 한다는냉엄한 현실을 무의식적으로나마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고대부분은 묻히기 마련이죠.
오래 일하고 싶다면 이경규처럼!
예능계는 방송가에서 가장 위험하고 불안정한 곳입니다. 광고 황금시간대에 위치한 터라시청률 하나로 프로그램이 접히고인기인들의 목이 날라가는 경우가 허다하죠. 하지만 이러한 '예능정글' 속에서'타잔'과 같은 생존력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니바로 개그맨 이경규입니다. 81년 데뷔해서 2017년 지금까지 약 36년간최고의 예능인으로서 대우를 받고 있죠. 그의 장기독주 비결은 무엇일까요? 최근 노동시장 유연성이 심화됨에 따라고용불안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많은데요. 우리가 속한 IT업계는 더욱 심한 것 같습니다. 이에 이경규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롱런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볼까 합니다. 항상 배우고 늘 새롭게 그는 MBC 공채개그맨으로 데뷔를 했으나특유의 경상도 사투리와쟁쟁한 선배들의 활약으로초반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런저런 배역을 소화하면서조금씩 이목을 끌었고90년대 들어 <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라는획기적 아이템을 지닌 프로그램을 통해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평판관리자 유재석을 배워라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평판이 업무평가로 직결되는 상황을종종 보곤 합니다. 평판이 좋지 못하면성과가 좋아도 100% 인정받기 어렵고 (아주 꼬투리만 잡혀봐라) 평판이 좋으면성과가 조금 부족해도실수가 가려지기 마련이죠. (어쩌다 그랬겠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좋은 사람과 일하고 싶고좋은 사람에 호감을 갖는 것은인지상정이니까요. 이러한 현상은 그 어떤 분야보다소통이 빈번하게 일어나고팀웍의 중요성이 큰 예능계에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방송인 유재석의 경우좋은 실력만큼 좋은 평판을 무기로예능계 장기간 독주하고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그의 사례를 통해평판의 중요성에 대해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볼까 합니다. 처음에는 유재석도 무개념이었다 지금이야 팬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서도'국민MC', '유느님'이라는 말이 나오지만처음부터 평판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재석은 20살 약관의 나이,KBS 공채 대학개그제에 나와장려상을 받으며 데뷔를 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웃기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실망스러운 표정과 함께귀를 후비며 무대로 나왔습니다.
래퍼 제이지가 돈을 버는 방법.."짐이 곧 기업이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콘텐츠업계 주요 화두로서셀러브리티(이하 셀럽)의 영향력이더욱 커질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셀럽이란 유명인사를 뜻합니다. 최근 콘텐츠, 광고업계에서는이들의 경제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가장 성공한 셀럽의 과거행보를 통해이들이 어떻게 명성을 기반으로돈을 벌고 있는지 설명해볼까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뉴욕힙합의 제왕,미국 대중음악계 거물,검은(흑인) 워렌버핏 등수많은 별명을 가진 래퍼 제이지입니다. 1. 마약상 출신 래퍼 그는 뉴욕 한 자치구인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수많은 흑인처럼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이미 고등학교 때 마약상을 하는 등꽤 터프한 인생을 살고 있었죠.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일반 마약상과는 다르게사업감각과 자제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고연봉 마약상’임에도 불구하고옷 사는 것 외 돈을 쓰지 않았으며폭력사건에 연루되는 일도 없었죠. 10년 넘게 마약상과 무명래퍼 생활을병행했던 제이지.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