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20대 모습은 요샛말로

‘헬조선, 수많은 흙수저’ 중 하나였습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 전공 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여러 차례 지상파 방송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800대 1’에 이르는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번번히 면접에서 물을 먹었죠.

 

(사진=CJ E&M)

(사진=CJ E&M)

 

 그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낮춰 케이블 방송사인

‘국회방송(KTV)’과 ‘한국스포츠TV’에서 활동을 했는데요.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첫 방송을 했을 때 국장으로부터

“대학방송 진행자도 너보단 낫겠다”는

혹독한 평가를 들어야만 했으니까요.

 

그는 창피한 마음에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손석희, 신동호 등 유명 아나운서를

성대모사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다고 합니다. 

 

(사진=jTBC)

(모든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우상! 사진=jTBC)

 

하지만 고통의 시간은 계속됐죠.

 

한국스포츠TV에서 캐스터로 활동할 때는

회사가 IMF 충격으로 폐업 직전 상황이 됐는데요.

 

경영진은 직원 대부분을 구조조정했고

인수될 때까지 버티자는 의도로

남은 직원들에게 최저생계비만을 주며

방송분량을 채우게 했습니다. 

 

김성주는 이때 하루 3~4개씩

스포츠중계 방송을 했는데 나중에

연간 단위로 세어보니 1000개에 가까웠다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나아지지 못하자 

전사원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회사 좀 살려달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려야 하는 상황까지 왔는데요.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2015년에_촬영한_광화문_(Gwanghwamun_Gate_in_2015)

(사진=위키피디아)

 

그림9

 

“이때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던 친누나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너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묻더니

대충 짐작한 듯 집에서 이야기하자 하더라고요”

 

“스스로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해

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어요”

 

“왜 이렇게 세상은 냉혹한가,

왜 나는 아나운서의 길을 택했나 자문했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1999년 MBC 아나운서 공채시험에

또 다시 지원, 드디어 합격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는

면접 때 사내 간판급 아나운서 목소리를 흉내냈더니

경영진이 너무도 좋아했다고 합니다.

 

과거 개고생이 헛고생이 아니었던 거죠.

 

이때부터 김성주의 커리어는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일단 그는 동기들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케이블에서 3년간 인이 박힐 정도로 활동을 했으니

경험과 역량 모두 군계일학일 수 밖에 없었고요.

 

무엇보다도 스포츠쪽의 PD 및 제작인력들은

입사 전부터 김성주를 알고 있었습니다.

 

(풋풋했던 시절, 사진=MBC)

(풋풋했던 시절, 사진=MBC)

 

그가 몸담았던 한국스포츠TV는

나름 국내 유일 스포츠전문채널이었고

정말 98년에는 틀면 나왔으니까요.

 

이렇게 하나둘씩 일거리를 받으며

사내 입지를 강화하던 2002년.

 

홍명보_허정무_정몽규_8

 

다들 기억하는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인데요.

 

김성주는 이른바 ‘국민 캐스터’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관행상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경험 많은 시니어만이 맡을 수가 있는데

선배 아나운서가 급한 일정이 생겼다며

가장 스포츠 중계를 잘한다는 그에게

대타를 요청했거든요.

 

김성주는 차범근 해설위원과

찰떡과 같은 호흡을 맞추며 높은 시청률을 찍었고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됐습니다.

 

그림12

(사진=SBS 힐링캠프)

 

차범근 해설위원 또한 김성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앞으로도 계속 이 사람과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임으로써 사내 입지가 확 올라갔죠.

 

그는 MBC 간판 캐스터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예능 분야에도 손을 댔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아나운서가 예능을 하는 것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나

대체로 점잖고 무게감 있는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성주는 대머리 분장을 하는 등

망가지는 역할을 맡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은 또라이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사진=MBC)

(동료들은 또라이인 줄 알았다고, 사진=MBC)

 

이때 아나운서 국장이었던 손석희는

조용히 불러 이렇게 충고했다고 합니다.

 

그림13

 

“아나운서로 오래 일하고 싶다면

예능 그만하고 망가지는 역할 그만해라”

 

“아나운서는 적어도 언론인으로서

전문성이 있다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활동하면 사람들은 널

언론인이 아닌 예능인으로 보기 시작한다”

 

“예능인할 거 아니지 않냐. 당장 접어라”

 

하지만 김성주의 마음 속에는

언론인보다 예능인이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좀 더 경제적인 성공을

추구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림9

 

“아나운서는 방송국 정직원이기 때문에

예능방송에 출연해봤자 시간외수당으로

꼴랑 2~3만원 받습니다”

 

“하지만 A급 예능인들은

출연료가 1000만원을 넘잖아요”

 

“내가 그들보다 못한 게 전혀 없는데

왜 그래야 하나 문제의식이 있었죠”

 

그는 결국 프리선언을 했고

다시 한번 고난의 행군을 시작합니다.

 

그림14

 

“인터넷기사를 보면 저에 대한 수식어가

‘시청률 제조기’, ‘국민 캐스터’길래

유재석, 강호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아래 정도는 되겠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1년 가까이 불러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리 아나운서에 대한 견제,

혹은 거대 방송사의 음모인가 싶었어요.

하지만 곧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림14

 

“저는 그저 소속 아나운서였기 때문에

방송에 나왔던 거고 방송에 나왔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거에요”

 

“MBC라는 타이틀을 떼는 순간 경쟁력이 없던 거죠”

 

“1000만원 받는 사람은 알고보니

1000만원을 받는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사진=MBC)

(사진=MBC 무한도전)

 

“그만큼 시청률을 보장했고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는 언제든지

목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어렵게나마 <명랑히어로>, <화성인바이러스> 등

한두 개 예능 프로그램을 맡았으나

현실은 생각보다 더 냉엄했습니다.

 

그림14

 

“같이 방송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분은 이경규 선배였어요”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마음에 안들면 화를 냈고

실력도 없으면서 뭐 믿고 프리했어 라는 대사가

방송에 여과없이 나갔어요”

 

“한번은 베이징 출장을 같이 갔을 때

전스탭이 호텔방에 모여 새벽 3시까지

맥주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방송은 이래야 한다 한참 설교하시더라고요”

 

(사진=SBS)

(사진=SBS)

 

“너무 졸려서 잠깐 졸았어요.

이에 맥주캔을 던지며

정신이 썩어빠진 놈이라 하시더라고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대기실 구석에서 빵을 먹고 있었을 때

김구라가 다가와서 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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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무슨 죄지었냐” 

 

아무리 그래도 10년차 아나운서인데

당시 어깨가 얼마나 쳐졌길래 이런 말을 들었을까. ;;

 

각종 실언으로 ‘밉상 방송인’이 됐던 때도

이 시기였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의 인성에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요.

 

어떻게든 방송분량을 만들고자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봅니다.

 

(김정주 넥슨 회장이 몰라보고 무시했다는 일화, 사진=SBS)

(김정주가 넥슨 회장인지 모르고 무시했다는 일화, 사진=SBS)

 

그는 가장이자 3대 독자로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며

힘든 방송생활을 이어나갔는데요.

 

늘 방송 모니터링을 보면서

유재석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했나,

윤종신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했나

대사를 받아적고 따라해보고..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해보고..

 

섭외가 안들어왔을 때는

초조함을 느끼는 나날의 연속이었죠. 

 

시간이 흐르자 특유의 뚝심이 힘을 발휘했습니다. 

 

먼저 전문 분야인 스포츠중계에 있어서는 

대체 불가능한 인력으로 자리를 잡게 됐고

‘슈퍼스타K’, ‘복면가왕’ 등 쇼프로그램에서도

발군의 진행능력을 입증받았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 육아열풍에 맞춰

‘아빠, 어디가’ 등 성공작이 나오기도 했죠. 

 

그는 훗날 이경규가 면박을 준 것에 대해서

이렇게라도 방송분량을 만들어주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술회합니다. 

 

(사진=CJ E&M)

(사진=CJ E&M)

 

뭐 예의상 한 말일 수도 있고

정말 깨달음을 얻어서 한 말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이죠. 

 

누구든지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너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라는,

혹독한 시험대에 서게 됩니다.

 

그 회사의 네임벨류가 높으면 높을수록

시험대 또한 혹독해지죠.

 

평소에 선물을 보내고

웃음으로 대하던 사람들이

전화를 안받았을 때 생기는 그 인지부조화! ㅜㅜ

 

현업을 떠나면 찬밥이라는데

방송인들은 오죽할까요. 거의 뭐 언밥이라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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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성주 이전에

많은 아나운서들이 프리선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시점에서

자생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 손으로 꼽으며

강수정과 같은 인기 아나운서조차

홀로서기에 실패했다는 평가입니다.

 

반면 김성주는 자생과 홀로서기를 넘어

MBC 아나운서 시절 때보다

더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성공비결을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데요.

 

그는 크게 두 가지를 거론합니다.

 

(사진=티핑엔터테인먼트)

(사진=티핑엔터테인먼트)

 

첫 번째는 안정감.

 

A급 방송인처럼 강한 흡입력과 개성은 없지만

수많은 방송경험을 통해 있는 듯 없는 듯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거죠.

 

두 번째는 성실함.

 

앞서 언급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방송준비 열심히 하고, 모니터링 철저히 하고,

배우고 익히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거죠.

 

제가 보기엔 이 두 가지도 맞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안정감 있고 성실한 아나운서는 많으니까요.

 

이보다는 고난이 다가왔을 때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치욕과 고통을 감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2-1

(과하지욕,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순간적인 치욕에 흔들리지 않는다. 사진=기록화)

 

만약에 말이죠. 

 

전단지를 돌릴 때 아나운서 꿈을 포기했다면,

이경규가 던진 맥주캔에 울컥해 대들었다면,

지금의 김성주가 있었을까요?

 

(참조 – SBS 힐링캠프)

 

(참조 – tvN 스타특강쇼)

 

(참조 – MBC 황금어장)

 

(참조 – 나무위키)

 

(참조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참조 – 각종 언론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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