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견

조영남, 한미약품, 가치의 재분배

2016.05.19 23:08

1.
얼마 전에 조영남의 대작 관련해 큰 이슈가 있었죠.
10만원의 수고비로 섭외한 60세 무명화가에게 그림의 대부분을 맡기고,
완성된 그림에 본인의 사인을 한 후 수천만원에 작품을 팔았다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미술쪽에 발가락 좀 담궜다는 사람들 SNS에는 갑론을박이 난리도 아닙니다.

 

“유명세를 이용한 착취이자 사기다”
“컨셉과 철학이 중요하지 본인이 붓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 미술에 대한 소양이 풍부하지도 않고,
화투장 몇 장 그려놓는게 왜 수천만원에 팔리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진짜 잘못된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소득의 재분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물감값과 아웃소싱에 백만원도 안되는 비용을 들이고,
몇천만원에 다른 이에게 팔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영업이익률입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이익을 함께 이룬 사람과 나누지 않고 혼자만 챙기려고 한다면
당연히 그것을 문제삼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만약에 그 화투장에 색칠해준 무명 작가에게 지분 형태의 판매수익금이 돌아갔다면
과연 이러한 대작 논란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미디어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수의 노력, 보이지않는 능력, 측정할 수 없는 기여들이
비상식적인 가치창출을 이뤄 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설비와 인적자본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코드 몇 줄에 불과한 웹서비스로 유니콘 기업이 생겨납니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점점 더 많아지는 동안,
열정페이에 심신이 털리는 무명의 인재들도 계속 늘어납니다.

 

4.
거대한 무형의 가치가 세상에 퍼지는 동안
자신의 기여도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예전과 다른 패러다임에서 발생한 가치이다 보니
명확한 계량이 어렵습니다. 계량이라는 게 정말 필요한지도 의심이 되구요.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과실을 얻은 이들의 상도덕과 인간성에 호소해야 하나 싶습니다.

 

5.
작년에 한미약품이 기술수출로 몇 조인가를 벌어 들였을때,
한미약품 주가 상승으로 차 바꾸고 집 바꾼 개미 투자자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 때의 주가 상승이 이성적인 것인가는 논외로 하고,
전 임성기 회장의 ‘주식 상여금’ 뉴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계산이 있건 없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은 분명히 아니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회장님이 자기 주식을 쿨하게 나눠 준다면,
직원 입장에서 뿌듯한 기분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 같습니다.

 

6.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제약 바이오가 될 수도 있지만,
IT 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가장 핵심적인 자본은 ‘인재’입니다.

 

인재는 정성적, 정량적인 보상을 받을 때,
의지가 생기고 더 큰 생산성을 발휘합니다.
가치를 창출하고 그에 대한 과실을 얻었을 때,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의 기여에 감사하고 나눌 줄 안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더 좋은 결과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수입의 분배가 아닌 수입의 재투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저는 아무한테도 주식을 나눠 받아본 적 없고
월급 받아서 제 돈으로 주식 사 모으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통 크게 저를 도운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댓글 (13)
  • 아서정

    아서정

    2016년 5월 19일 오후 11시 21분

    "열정페이에 심신이 털리는 무명의 인재들"
    왠지 한국의 블로거들이 생각나네요.
    결국,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말았죠.
    블로그 관련 서비스들 중에 현재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과연 있는지 궁금하네요.
    • 최용식 대표

      최용식 대표

      2016년 5월 19일 오후 11시 27분

      홍보포스팅 하나 작성하는 데 5만원 혹은 제품무료이용권이라는 이야기 듣고 충격 먹은 적이 있습니다. ;;
      • 이승훈

        이승훈

        2016년 5월 20일 오후 3시 04분

        블로그 홍보포스팅 하나 작성하고 1000만원 받은 적 있습니다.
        2016년 현재 블로그 홍보포스팅 하나 작성하는 데 비용은 클라이언트가 20만원 정도입니다. 대행사가 그 중 20~40%정도를 취하고 블로거는 60~80%정도 취합니다.
      • 최용식 대표

        최용식 대표

        2016년 5월 21일 오후 11시 07분

        끔찍하네요. ㅜㅠ
    • 여신욱

      여신욱

      2016년 5월 20일 오후 10시 37분

      블로거들이 힘들어지는 것에는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고, 한 편으로는 진입장벽이 높은 업이 아니다 보니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져서 파이가 작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 최용식 대표

    최용식 대표

    2016년 5월 19일 오후 11시 26분

    IT업계 부의 불균형이 심해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죠. 첫 번째는 한계생산비용이 제로에 가깝다는 비즈니스 속성상 성공했을 때 리워드가 엄청나다는 것. 두 번째는 워낙 트렌드가 빠르고 변동성이 크다보니 의사결정 기회비용이 무지 높아졌다는 것, 세 번째는 인재채용의 정보비대칭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에휴.. 여러 모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ㅠㅠ
    • 여신욱

      여신욱

      2016년 5월 20일 오후 10시 34분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론 이거 뭐 맘편히 발뻗고 자는 것도 힘들어질 정도네요. 잠시도 성장을 게을리해선 안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ㅠㅠ
  • 명경석

    명경석

    2016년 5월 20일 오전 2시 57분

    #### 대표와 직원, 월급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일을 시키는 사람과 받아서 하는 사람 간에 벌어지는 소득 재분배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볼때도 많은 논란이 있었죠... 리더가 어떠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됩니다...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이 되느냐 부하의 칼에 목을 내놓아야 하느냐를 가름하는 것은... 평상시, 그리고 부를 획득 했을때 주변에 어떻게 처신했느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유비가 자신보다 재주가 좋은 관우, 장비를 휘하로 두고 있었던 것은 인재를 시기하지 않고 재대로 볼줄 알았고 그에 맞게 대우했던... 그 사람이 가진 그릇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였으니까요...
    • 최용식 대표

      최용식 대표

      2016년 5월 20일 오후 1시 38분

      스타트업 동네에선 엑싯할 때 드러나죠. 리더의 진정성이..
    • 여신욱

      여신욱

      2016년 5월 20일 오후 10시 32분

      스스로가 똑똑하고 잘나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과, 타인과 함께 성장해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스케일 자체가 다른 것 같습니다.
  • 장혜림

    장혜림

    2016년 5월 21일 오전 10시 09분

    저도 조영남씨 사건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작년엔가 서촌 모 미술관에서 IT와 예술을 결합한 전시가 열렸는데요. 그때 전시한 분 중 한 명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고요. 그분이 아이디어 낸 건 자기지만 구현하고 설치한 건 대학원생들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규모가 크고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 필요한 현대 예술, 미술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분배를 제대로 하느냐였고요. 그분이 그랬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저의 시각에선 한국에서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라면 미술계든 IT계든 어디든 노동에 대한 보상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한편으론, "과연 현대 예술의 특성이라는 이름으로, 관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영남씨와 저 분의 관계가 10만원으로만 이뤄졌는지, 이게 좀 궁금하긴 하네요.
    알려지는 건 아이디어를 떠올린 작가와 작품 이름인데, 보상은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슬쩍 삐져나온 사건인 것 같아요.
    • 아서정

      아서정

      2016년 5월 21일 오후 7시 57분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페북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관행이 아니라 '사기'라고. 관행이라고 말했던 한국의 평론가, 기자, 교수들을 보면, 여기가 진짜 헬조선이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맨날 사회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떠들어대는 흔히 말해 논객이라는 유명인이(미학 전문가라며 책도 여러권 냈고, 지금 대학교수죠?) SNS에 한 말을 두고도 굉장히 어처구니 없어 하더군요. 근데 언론에서는 그 트윗을 그대로 기사화했죠. 그리고 일반인들은 유명인이 그랬다니까 마치 진짜 관행인 줄 알고, 또 그래도 되는 줄 알죠. 한국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인간들의 수준이 그런가 봅니다.
    • 여신욱

      여신욱

      2016년 5월 24일 오후 10시 18분

      그림 한 장이 수천에서 억대가 넘어가고부터는 이미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영역, 투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에서 관행이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면 어떻게든 역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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