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견

중국기업의 굴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16.06.21 01:26

삼성과 엘지가 중국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인증에서 탈락했다고 합니다. 아직 마지막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닌듯 하나, 현지에 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를 하고도 어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들도 있는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건이 대중국 사업협력에 있어 우리나라 기업들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에 공장을 지었으니 응당 정부에서 챙겨 주겠지”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지요.

 

과거 와자유치를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하던 시절, 대형 외국기업의 공장유치가 지방정부의 성과를 대변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몇억불 짜리 공장을 지으면 그로 인해 유발될 고용효과와 세수 창출을 레버리지로 지방정부로부터 인센티브도 받고 운영 과정에서의 보호와 사업권까지 보장받기도 했습니다.

 

이제 과거 투자유치를 주도하던 우등생인 연해지역 지방정부들은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항저우는 전자상거래의 글로벌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산업까지 손을 뻗고 있고, 심천은 텐센트, 화웨이, BYD, DJI등 글로벌 스타기업을 내세워 스마트폰, 드론, 전기차 등 첨단 제조 산업의 거점으로 자리매김 중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외자기업의 투자는 이제 별다른 큰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시진핑 정부의 국가중점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는 북경과 상하이가 반도체 굴기를 목표로 해외 기업 인수합병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남경이 전세계 파운드리 분야의 압도적 1위 TSMC를 유치하였고, 인텔의 대련, 칭화유니의 무한이 낸드 시장을 노리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내외 기업과 손잡은 지방정부들은 10여년전 처럼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통해 중국 정부의 차세대 IoT 산업 거점과 데이터 센터 사업 거점 유치를 겨냥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역내 업체나 중국기업과 공동으로 미래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만한 건이 아니라면 개별 기업의 투자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생산시설을 투자해 주고 혜택을 얻어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중국정부는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이 단순한 제조기지나 소비시장이 아닌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필요로 하는 것 역시 단순한 고용지표 개선과 세수확대가 아닌 자기 지역을 해당 산업분야의 거점으로 만들어줄 전략적 파트너로 바뀐지 한참이 되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과거의 방식 대로 투자를 해주고 금전적 사업적 혜택을 바란다면, 기대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혹은 돈과 기술만 털리고 버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나 공장을 지어버리고 나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털고 나오기가 더 어렵기에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중국 시장에 들어갔다가는 진퇴양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냥 아예 중국시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들어가지 않을수 없다면, 더 똑똑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눈앞의 인센티브만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기업과의 협력을 선제적으로 제안하여 그 우위가 사라지기 전에 전기차, IoT,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 신사업 생태계에 핵심 맴버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우리 투자를 기반으로 당신네 지역에 첨단산업의 생태계를 같이 조성해 보자는 적극적인 제안이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 내 공장이 돈 잘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기업들의 생태계” 내에 빼앗기지 않을 확고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며, 중국 기업들의 생태계 속에 확실한 맴버로써 자리를 잡아야만 중국 업계의 발전의 과실을 나눠먹을 수 있고, 또한 버려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투자유치의 시대에는 현지법인과 공장들이 더 많은 것을 지키기 위해 담을 쌓고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포지션을 잡고 맴버가 되기 위해 뼈를 깍고 피와 살을 섞는 것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앉아서 서서히 고사되어 갈 바에는 먼저 한발 나아가 싸워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만…이런 소리를 할 만한 기술적 우위를 가진 업종이 몇개나 남았는지가 걱정일 따름이네요…

 

중국 관련 소프트한 이야기가 주류인듯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중국 투자에 패러다임을 바꿀때가 아닌가 싶어 몇자 적었습니다. 대기업 이야기 같지만, 대중국 사업을 추진하는 쪽에는 다 적용 가능하다 싶습니다.

 

댓글 (9)
  • 명경석

    명경석

    2016년 6월 21일 오후 2시 16분

    #### 중국 정부의 4차 전기차 배터리 인증에서 탈락한 LG화학과 삼성SDI로 시끌시끌한데요.. 관시와 제품의 품질.. 둘 중에 어느 것에 기인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냐 라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관시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깊은관시를 가지고 있었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등의 중국 전기자동차, 그 시장에서 위의 두 업체가 제외되면 그 손해(?)는 엄청날 겁니다. 일단 8월에 5차로 재신청을 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사활을 걸고 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
    • Byungduck

      Byungduck

      2016년 6월 21일 오후 5시 24분

      제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그점 입니다. 꽌시는 "이해관계에 기반한 네트워크"입니다. 한국적 개념의 학연, 지연과는 다르지요.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상호간에 이해관계가 교차되는 지점이 강력해야 꽌시는 유지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해관계에 관계없이 도와줄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겠으나, 이는 인간적인 관계의 영역이고, 비즈니스에서의 꽌시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에 투자한 우리기업의 꽌시는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답은, 평소 더 친하게 밀착관리를 못했다기 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제시하는데 실패 했다는 것이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삼성 엘지가 비야디의 핵심 파트너로 테슬라의 중국진출에 대한 연합전선을 구축한 동지였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싶습니다. 북경에 순의구는 택시가 전부 전기차입니다. 완충시 150킬로 주행이 가능한 북기차의 모델입니다. 삼성엘지가 북기차의 전략적 파트너 였다면 어떤 상황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공장을 지어줄테니 인센티브를 줍쇼하는 모델은 더 이상 꽌시의 레버리지가 되지 못한다 생각이 듭니다. 중국을 무대로 벌어지는 글로벌 기업과 중국 기업의 합종연횡 가운데 우리는 누구와 손을잡고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가 우리 기업의 꽌시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 최용식 대표

    최용식 대표

    2016년 6월 21일 오후 10시 04분

    와.. 넘 잘봤습니다. 미국기업 주도의 플랫폼 리더십과 중국기업 주도의 플랫폼 리더십이 경쟁하는 상황이 멀지 않은 가운데 우리는 컴플리멘터(보완자)로서 얼마나 줄타기를 잘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이야기죠? 섬뜩하네요. ;;;;

    그런데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같이 할 분야가 있긴 하나요? 테크쪽에서는 중국기업과 비교해 확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딱히 떠오르지가 않네요. 굳이 있다면 음반, 방송 등 일부 콘텐츠? ㅜㅜ
    • Byungduck

      Byungduck

      2016년 6월 22일 오전 2시 52분

      딱히 없죠. 10년동안 우리의 테크 산업 기반은 오히려 퇴보(?) 했으니까요. 음반, 방송, 컨텐츠는 생태계와 플랫폼이 받쳐주지 못하면 그냥 장기판에 말 하나일 뿐이지 않을까요. 자본과 시장과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데 굳이 협력할 이유가 없죠. 그냥 돈주고 부려먹기나 하겠지요...컨텐츠 제작자 개개인이나 몇몇 개별 회사는 먹고 살겠으나 우리기업이 "주도"하는 무언가는 나오지 못할 분위기 구만요.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아직 우리에겐 12척의 배가....가 아니고 NAND와 DRAM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지금 이대로 두면 그냥 대기업 두군데가 먹고사는 반도체의 한 종류이겠으나, 사실 NAND 생태계는 스토리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로 이어지는 미래산업의 출발점이며, VR, AR로 대변되는 기가비트급 용량의 컨텐츠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장벽들 중 한 부분입니다. 현재의 우위를 살려 미국 중국의 플레이어들과 생태계 구축을 같이 주도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중소 테크기업들을 살리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최용식 대표

        최용식 대표

        2016년 6월 22일 오후 3시 47분

        그렇군요. 차라리 하드웨어가 낫다는 것. ㅜㅜ 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최준호

    최준호

    2016년 6월 22일 오전 10시 42분

    2000년대 게임, 2010년 이후에는 화장품과 같은 제품이 중국에서 매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인 것 같아요 ㅎ 사실 it벤처 쪽의 기술력이나 기초 연구 정도는 저는 이미 중국에 따라잡혔다고 보구요. 이수만이 Culture Technology 를 이야기한 것처럼 어떻게든 '문화'와 매우 밀접하게 믹스되는 상품만이 앞으로 전망이 밝지 않을까...요?
    • Byungduck

      Byungduck

      2016년 6월 22일 오전 11시 38분

      네. 개인적으로 현재는 아직 컬쳐 프로덕트 단계이고, 이게 어떻게 테크와 연결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관심있게 보는 분야이기도 하고....당장은 넷플릭스 처럼 광고와 시청률을 높이기위한 옵티마이징 기술 정도 떠오르는데, 그 외에 테크가 컨텐츠와 결합될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 여신욱

    여신욱

    2016년 6월 22일 오후 9시 42분

    기술적 우위도 컨텐츠의 우위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문화'가 느껴질 수 있다면 차별화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화가 만들어지려면 뭐가 되었든 집요하고 차별화되는 지속적인 시도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것 저것 간만 보는 것 같습니다. 기술개발과 장인정신을 극대화시켜 문화로 만들어 버린 '화낙'같은 기업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최용식 대표

      최용식 대표

      2016년 6월 23일 오후 3시 34분

      말씀하신대로 기술은 이미 상향평준화 됐고 문화와 디자인, 팬덤, 플랫폼 및 비즈니스 전략에 많은 부분이 달린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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