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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스타트업을 경영하며 실감한 피터 드러커의 7가지 지혜
*이 글은 외부 필자인 손종수님의 기고입니다. 현대사회는 기술과 지식의 시대라고 합니다. 실제로 디지털 혁명은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죠. 하지만 저는 진정한 변화는 경영에서 일어났다고 봅니다. 라이트 형제가 없는 살림에 온갖 사람들의 반대를 이겨내며 간신히 비행기를 띄우기 9일 전, 당시 과학상을 휩쓴 유명한 과학자였던 새뮤얼 랭글리는 미 국방성의 지원과 각종 언론과 단체의 주목을 받으며 17년간 노력 끝에 시험비행에 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최고의 지식과 기술,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실패했고 자전거 장수였던 라이트형제는 단 4년 만의 노력으로 직접 비행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둘의 차이는 기술과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지식을 조합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었습니다. 아이폰 출시 당시의 기술도 대부분 개발된 지 10년 이상 된 것이었고, 애플은 다른 스마트폰 회사와 달리 기술 간 조합으로 사용자 경험을 향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경영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Management)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조합하고,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필요하죠. 경영이란 학문을 체계화한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민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입니다. 그는 경영학에 큰 공헌을 세운 사람입니다.
손종수
브라운백 주식회사 CEO
2022-10-13
최고의 리더를 만든 평범한 멘토들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안녕하세요. 홍선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고라 불리는 인물들을 만들어낸 멘토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최고의 리더를 만들어낸 평범한 멘토들'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범한 자질이라 해서 꼭 비범한 환경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한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가 비범한 인물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평소에 누군가의 일생에 대해 다룬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사람도 결국은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하는 점입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도 불굴의 의지로 돌파해온, 마치 강철 심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들이더라도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처받고 아파하는 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구나라는 점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번 글 뒷부분에서 소개해드릴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인데요.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영자이죠. 올해로 연세가 90세이셔서 이제는 사회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시는 분인데요. 1959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7명의 전 직장 동료와 함께 교토의 후미진 철공소 골목 2층에서 창업한 교세라를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적자도 보지 않으면서 임직원 8만여명의 글로벌 전자제품‧부품‧소재 업체로 키워낸 인물이죠. 2010년 일본항공(JAL)이 2조3221억엔(당시 환율 기준 28조5000억원)의 빚을 지고 파산했을 때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무보수 회장직'에 취임해 2년 7개월 만에 회사를 부활시켰죠. 저는 여태껏 이분이 쓰신 책을 10권 이상 읽었는데요.
홍선표
2022-07-21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한 4가지 조건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제 이름은 폴 개럿이라고 합니다. 저는 제너럴모터스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으며, 저희 회사의 부회장이신 도널드슨 브라운 씨를 대신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부회장님께서는 당신께서 기업의 최고 경영에 관련해서 GM의 정책과 구조를 한번 연구해 볼 의향이 있으신지 알고 싶어하십니다" 1943년 늦은 가을의 어느 날, 미국 베닝턴 대학의 철학 및 정치학 교수였던 34살의 피터 드러커에게 걸려왔던 전화인데요. 그가 전화기를 집어든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경영학의 아버지'이자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경영학의 아버지'란 호칭은 오직 피터 드러커에게만 허락된 호칭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이처럼 그는 경영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창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죠. 그런데 이 같은 학문적 업적에 조명이 집중되는 탓에 그가 평생에 걸쳐 몸담아온 또 다른 전문직 커리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요. 그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학자이면서 동시에 경영‧전략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사실 피터 드러커야말로 현대적인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죠. 앞서 소개한 GM의 제안이 그가 수행한 첫 번째 컨설팅 프로젝트였는데요. 그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2년 동안 GM 경영진의 '전폭적인 협조'(피터 드러커의 표현)를 받아가며 회사의 인사 제도와 경영 전략, 판매 정책, 조직문화 등 사실상 GM의 모든 영역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책으로 출간된 그의 '컨설팅 보고서'는 GM의 고위 경영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고, GM 내에서는 그의 이름에 대해 언급하는 일 자체가 금기시됐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노무 및 종업원 관계, 본사 스태프의 쓰임새와 역할, 딜러 관계와 같은 GM의 일부 정책들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지 않은가를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GM 경영진들에 대한 불경죄였고, 나는 결코 완전히 용서를 받은 바가 없다"
홍선표
2022-01-19
피터 드러커가 1인 창업자에게 전하는 3가지 조언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다루는 책을 읽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요. 이번 글의 시작은 제가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드리는 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2021년엔 피터 드러커가 쓴 책들을 연달아 읽었는데요. 그의 대표작이자 경영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책으로 평가받는 '매니지먼트'부터 시작해서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프런티어의 조건' 그리고 '피터 드러커 자서전'에 이르기까지 그가 쓴 책 6권을 읽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피터 드러커의 경영 철학과 전략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는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과 '피터 드러커 씨, 1인 창업으로 어떻게 성공하죠?', 두 권도 읽었고요. 단기간에 특정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 역시 피터 드러커로부터 배운 학습법인데요. 그는 젊은 시절부터 앞으로 3, 4년간 전념해서 공부할 분야를 정한 뒤 이 기간 동안에는 해당 분야의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독파해나갔습니다. 그는 살면서 약 40권의 책을 남겼는데요. 이중 절반은 우리가 피터 드러커라고 하면 떠올리는 경영학 분야의 책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유럽 중세역사, 일본 미술사에 대한 책들이었습니다. 뚜렷한 학습 목표를 정한 뒤 집중적으로 공부해나갔던 덕분에 이처럼 폭넓은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홍선표
2022-01-06
만약 국내 최고 뷰티 MCN 기업이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동화에서나 가능각이고 실제 삶에선.. 특히나 기업 경영에선 절대 불가능한 문장이죠. 여기 한 기업이 있습니다. 국내의 미개척 영역을 선점해 사업을 궤도에 올렸고, 매출도 빠르게 성장시켜왔습니다.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투자도 잘 받았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잘 헤쳐나갔고, 더 나아가 점핑 포인트로 삼았죠.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업계의 선구자적인 역할도 잘 감당했습니다. 2021년 현재까지도 그렇게 잘 달려왔습니다. 만일 이것이 동화속 이야기였다면 '이 기업은 이후로 천년만년 행복하게 흑자를 유지하며 잘 커갔답니다'로 쉽게 퉁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동화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이 기업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홍을 겪으며, 다음 단계로 한 발 내딛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중입니다. 국내 최초 뷰티 MCN 레페리 이야깁니다. (참조 - 흑자전환, 100억 투자유치... 국내 최초 뷰티 MCN '레페리'의 생존비결) 내홍(內訌).. 집단이나 조직의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일으킨 분쟁을 뜻하죠. 스타트업씬에서는 너무나 자주 보이는... 기업의 성장 속도가 너무나 빨라 조직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레페리에서 시나브로 시작되고 있었던 겁니다. "대표님, 오늘 인터뷰 하기 전에 사실 기업 평가 사이트를 미리 보고 왔습니다. 레페리의 평점이 꽤 낮고 악평도 상당히 많더군요" "대표의 열정과 능력은 높이 사지만 조직 체계가 엉망이란 말이 많았고요" "특이하게 2020년 하반기 부터 리뷰 수도 많아지고 악평의 수위도 높아지더군요" "2020년 하반기에 레페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레페리의 성장통 이야기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를 만든 7가지 지적 경험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1927년,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17세 청년이 고향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에 자리를 잡는데요. 이곳에 있는 면제품 수출 회사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집안 형편만 놓고 보면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일자리를 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의사, 변호사, 교수, 공무원 등을 배출해온 중상층 가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아들의 모습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도 이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는 ‘진짜 일’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이 그다지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학교 생활이 지겨웠고, 또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게 훗날 이 청년이 남긴 말이죠. 그래서 청년은 일단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함부르크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 뒤 학업에는 신경을 끄고 회사 일과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공부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당시는 조교들이 교수를 대신해서 출석 확인을 했는데, 그들에게 간단한 선물을 쥐여주는 것으로 출석 문제는 충분히 해결됐다” 매일 오후 4시에 회사 일을 마친 청년이 곧장 달려간 곳은 회사 근처 도서관이었습니다. 평일에는 이곳에서 매일 저녁 늦게까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죠. “나는 주중의 5일 동안은 함부르크의 유명한 시립 도서관에서 저녁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15개월 동안 나는 독일어와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2005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 청년의 이름 앞에는 항상 따라붙는 호칭이 있습니다.
홍선표
2021-03-15
세계 최고의 CEO 잭 웰치를 기념하며
*이 글은 우샤오보채널 콘텐츠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미국 공업시대 마지막 레전드인 잭 웰치가 지난 3월 1일 8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잡스, 베조스, 저커버그 전엔 그야말로 '잭 웰치의 시대'였죠. 저는 1999년 상하이에서 열린 '포춘지' 행사장에 처음 잭 웰치를 만났는데요. 그때 그가 발표했던 내용 중 "나는 중국을 잘 모르지만 앞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 같다"고 한 부분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 글은 고인이 된 잭 웰치를 기념하며 그의 업적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위기 속 GE 회장에 취임 1960년 25세의 잭 웰치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엔지니어 신분으로 GE에 취직하게 되는데요. 그때 그의 연봉은 1300만원(1.05만달러)밖에 안됐죠. 하지만 20년이 지난 뒤 그는 GE의 회장이 됐으며 또 20년이 지난 뒤 아직 전성기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잭 웰치가 은퇴할 쯤 그는 '세계 최고의 CEO'로 불렸죠. 이후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GE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샤오보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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