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박태준이 협상에서 활용한 2가지 병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1973년 12월 23일, 당시 포항제철 사장이었던 박태준과 외국계약담당부장 노중열은 일본 도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하루 전에 결정된 갑작스러운 출장이었는데요. 딱히 누구를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10시간을 날아 경유지인 독일 함부르크에 내린 박태준은 프랑크푸르트 대신 이곳에서 내리자고 말합니다. "호텔 예약도 안 돼 있지 않습니까?" 라고 묻는 부하 직원의 말에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면 돼 있소?" 라고 반문하면서 말하죠. 그만큼 아무런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떠난 여정이었습니다. 함께한 부하 직원도 대체 이번 출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죠. 공항을 나와 호텔에 숙소를 잡은 박태준은 먼저 한숨 푹 잔 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있는 대형 제철설비업체의 임원들에게 지금 당장 만나자는 전화를 겁니다. 당시 포항제철은 연간 철강 생산량 103만톤 규모의 1기 공장의 준공을 마친 뒤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동시에 더 큰 규모의 2기 공장 착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기 공사 이후엔 3, 4기 증설 공사도 계획돼 있었던 만큼 설비업체에 포항제철은 떠오르는 큰손이었죠. 크리스마스 휴가 중이었지만 전화를 받은 설비업체의 중역들은 자동차와 기차로 달려와 단 몇 시간 만에 호텔 객실로 모두 모여들었는데요. 그들의 손에 들린 가방에는 고로와 코크스, 소결 설비 등 회사가 판매하는 각종 제철설비를 소개하는 팸플릿들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포철은 1기 설비의 대부분을 일본 업체에서 구매했지만, 2기부터는 유럽의 여러분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2기 공사에 들어갈 설비 예정금액은 3억5000만달러입니다." "나는 원활한 입찰을 진행하기 위해서 새해 1월 5일까지 여러분이 직접 포철로 오시길 희망합니다. 우리 회사 2기 설비구매의 문호는 틀림없이 여러분에게도 활짝 열려있습니다." 모두가 모인 걸 확인한 박태준 회장은 설비업체 임원들에게 입찰에 참여하고 싶다면 약 2주 뒤까지 포항 영일만으로 와달라고 요구합니다. 설비업체 임원들 모두 연말, 연초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휴가 계획이 잡혀있었지만 포항제철 납품이라는 대어(大漁)를 낚을 기회 앞에서 휴가는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새해를 기념하는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극동의 바다가 궁금합니다"라는 미소 띤 대답과 함께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죠. 1970년 4월 경북 포항 영일만 허허벌판에서 첫 삽을 뜬 포항제철(포스코)은 1992년 9월 25일 전남 광양만에 광양제철소 4기를 준공하며 연간 2100만 톤의 철강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3위의 철강업체로 거듭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