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의 쓸모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대나무통으로 바닥을 긁는 남자 2020년 유명을 달리한 엔니오 모리코네는 아마도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음악가로 역사에 남겨질 것입니다. 약 60 여년에 걸친 활동 기간 동안 400편이 넘는 작품, 700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 전 세계 3301장의 앨범에 자신의 작품을 수록한 작곡가가 다시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 엄청난 성공의 바탕에는 단순한 다작의 능력을 넘어서서 도저히 한 사람의 작품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입체적인 작품세계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여러 장르의, 여러 색깔의 음악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애초에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작가 자신의 경험과 세계관을 투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세 개의 걸작은 있을 수 있어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모르는 곡이라도 가수나 작곡가가 예상되는 것은 그런 '세계관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결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엔니오 모리코네는 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요? 몇 달 전 개봉했던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훗날 대중음악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원래 그는 프로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트럼펫을 배웠고 열네 살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악 학교 중 하나인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입학한 클래식 영재였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클래식 음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고 결혼 후 아이까지 태어나자 어쩔 수 없이 대중음악 편곡자의 길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대중음악을 경멸하던 스승과 동료들의 시선을 피해 가명까지 써야 했죠. 하지만 워낙 탄탄한 음악교육을 받아온 터라 작업 자체는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그는 곧 많은 사람들이 찾는 편곡자이자 연주자로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편안한 삶에 안주하거나 혹은 다시 클래식 작곡가로 돌아가 살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엔니오는 좀 엉뚱한 선택을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전위음악 그룹인 '새로운 조화의 즉흥연주 그룹'(Gruppo di Improvvisazione di Nuova Consonanza)을 만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