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칩4동맹' 제안이 의미하는 것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권석준님의 기고입니다. 최근 미국이 꺼내 든 이른바 '칩4동맹'은 좁게 보면 네트워크의 충격 회복력(network resilience)을, 넓게 보면 네트워크의 분리 및 안정화를 목표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칩4동맹(chip4 alliance) 칩4의 '칩'은 반도체를 의미하며 '4'는 미국, 한국, 일본, 대만의 동맹국 숫자를 의미합니다. 전자는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주요 노드가 갑자기 분리됐을 때, 네트워크 전체가 갑자기 붕괴되는 것을 막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 노드(node) 네트워크에서 연결 포인트 혹은 데이터 전송의 종점 혹은 재분배점을 말합니다. 후자는 네트워크가 외부의 충격을 받았을 때 충격을 완화하고 조속히 평형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트워크는 당연히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 혹은 밸류체인(value chain)을 의미합니다. 언뜻 보면 먼저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만들고 나서 네트워크의 노드가 빠지든 뭐든 충격이 왔을 때 그것에 대비하는 전략이 더 적절한 전략처럼 보일 것입니다. 2009년 국제금융위기의 원인은 여럿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국제 금융기관들의 상호 의존 네트워크가 너무 촘촘했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봅시다. 한 기관이 무너지자, 그 기관을 보증했거나, 혹은 투자한 기관들이 연이어 도미노 무너지듯 충격을 받아 네트워크 전체가 흔들렸고, 그 과정에 많은 기관들이 도산하거나 큰 손해를 입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도미노를 만들 때 일부러 몇 마디마다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도미노의 기초 전략인데, 국제금융네트워크는 빈 공간이 거의 없었거나, 빈 공간의 간격이 너무 길었던 것입니다. 빈 공간을 메꿀 정도로 금융 네트워크가 촘촘해진 상태로 유지됐던 까닭은 다름 아닌 효율성의 극단적 추구 때문이며, 실제로 IT가 뒷받침된 국제 금융 네트워크는 2009년의 위기 전까지는 효율성이 안정성보다 우선시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교훈을 반면교사 삼아 네트워크 전체의 붕괴가 쉽게 일어나지는 않도록 곳곳에 안전장치가 마련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생각하는 글로벌 반도체 네트워크의 전략은 전자를 먼저 챙기고 후자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선후가 바뀐 것 같아 의아할 수 있죠. 그렇지만 전자를 먼저 챙긴다는 것은 네트워크의 분리를 이미 예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짐작하듯, 이 분리 대상은 다름이 아닌 중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