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떡을 팔던 청년이 연매출 680억 식품기업을 일군 3가지 전략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제아무리 위대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 명의 인물과 마주치게 됩니다.

바로 창업자입니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글로벌 기업이더라도

처음엔 창업자 한 사람의 머릿속 아이디어와 의지,

그리고 행동으로 시작되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은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낸 창업자를 동경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회사를 일궈낸 창업자일수록 더 큰 존경을 받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괴팍스러운 성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데에도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입양아 출신이면서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간

그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큰 영향을 미쳤죠.

 

(출처=셔터스톡)

 

일본의 ‘경영의 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3명의 기업인이 있는데요.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혼다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 이렇게 3명입니다.

 

사실 일본에는 이들이 만든 회사보다

규모가 더 큰 기업들도 적지 않은데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같은 회사들이 그렇습니다.

 

일본의 3대 기업집단으로 꼽히는 이 회사들은

길게는 수백 년 전인 에도 막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일본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회사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회사들의 경영자가 아니라

앞서 말한 3명을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꼽습니다.

 

이들 3명이 남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에서 시작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본을 대표하는

큰 기업을 일궈냈기 때문입니다.

 

마쓰시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요.

혼다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습니다.

 

이들보다 한 세대 뒤쯤 태어났고

3명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이나모리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설움을 겪었죠.

 

학력 차별 때문에 담당하던 업무에서 밀려난 게

이나모리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강소기업 칠갑농산

 

이번 글에서 소개할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또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서 온갖 고생을 겪으며

회사를 키워낸 면에선 방금 말한 경영의 신들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칠갑농산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농촌에 있는

작은 상점을 떠올리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198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연매출 680억원,

직원수 450여명에 달하는 식품기업입니다.

 

(칠갑농산이 생산하는 상품들. 출처=필자)

 

떡국용 쌀떡부터 시작해서 떡볶이용 떡,

각종 생면과 건면, 수제비, 냉동 만두를

비롯한 식품을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떡국과 쌀국수,

떡볶이 등 간편 조리식품 역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 제품의 80%는 쌀을 주원료로 하는 쌀 가공식품인데요.

칠갑농산은 국내의 대표적인 쌀 가공식품업체이자

강소 식품기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능구 회장이 처음 쌀 가공식품과 인연을 맺은 건

회사를 설립하기 몇 년 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인데요.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능구 회장이

회사를 키워온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남들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시작해

연매출 680억원의 강소기업을 키워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능구 회장을 만나 인터뷰하고

또 그의 자서전 ‘나는 쉬운 길을 선택한 적이 없다’를 읽으면서

그의 성공 노하우를 크게 3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었는데요.

 

(출처=필자)

 

각각의 전략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꼽은 이능구 회장의 성공 전략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기술 개발은 현장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필요한 기계를 직접 만들어라.

 

둘째, 탁월한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 방법을 함께 고민하라.

 

셋째,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시장에서 1등이 돼봤자 소용없다.

먼저 시장을 키워라.

 

쌀떡을 팔던 청년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 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능구 회장이

처음 서울로 올라온 건 20대 후반이던 1972년이었습니다.

 

그가 아내와 아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서울로 떠난 건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첫아들은 뇌막염에 걸려 태어난 직후부터

줄곧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땅에서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봐야

아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었죠.

 

아들을 살리기 위한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택한 서울행이었는데요.

 

(젊은 시절의 이능구 회장과 부인인 유순식 여사. 출처=칠갑농산)

 

“원래는 강원도에 있는 광산에 들어가서 일하려 했는데

친척분이 광산에서 일하는 건 

너무 위험하고 몸도 망가지니까

차라리 자기한테 오라고 해서 서울로 올라갔어요”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지만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그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건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요.

 

서울에 올라온 뒤 몇 년 동안은 아이스크림,

그 당시 표현으로는 아이스께끼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친척의 소개로

도매업체에서 떡국용 쌀떡을 떼다가

정육점들에 가져다 파는 일을 시작했죠.

 

당시엔 사람들이 정육점에서 국거리용 소고기를 살 때

쌀떡을 함께 사서 떡국을 끓여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죠.

 

이때가 이능구 회장이 쌀 가공식품과

첫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5~6년간 부지런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육점들을 고객으로 확보한 덕분에

이능구 회장의 형편도 조금씩 피게 됩니다.

 

1970년대 후반엔 압구정동 등 서울 강남권에

대규모 아파트가 막 들어서기 시작했는데요.

 

(출처=서울역사박물관)

 

럭키슈퍼, 우성슈퍼와 같은 슈퍼마켓들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하던 시기기도 합니다.

 

이 같은 슈퍼마켓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형 거래처를 확보한 덕분에

1980년대 초반 무렵엔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강남 슈퍼마켓들에 떡국 떡을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1톤 트럭 한 대도 뽑고 어느 정도 돈도 만질 수 있었어요”

 

이능구 회장이 직접 공장을 차리고

떡을 만들기 시작한 건 1981년부터입니다.

 

유통업뿐 아니라 제조업으로까지 업역을 넓힌 건데요.

그리고 이 시기부터 앞서 말씀드린

 3가지 경영 전략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1. 필요한 기계를 직접 만들어라

 

칠갑농산이 처음 설립된 1982년 무렵만 해도

떡 생산 공장들은 말만 공장이지

동네 방앗간 수준의 설비에 머물렀습니다.

 

방앗간보다 떡을 찌는 시루의 숫자가 많다뿐이지

모든 생산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노동으로 채워졌습니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상품 하나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전혀 누릴 수 없는 구조였죠.

 

이능구 회장은 그때까지 해오던 것처럼

사람이 하루 종일 시루 앞에 붙어 앉아 떡을 찌는

가내수공업 방식으로는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없다는 걸

공장을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는데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개발한 기계가

스팀 압력을 활용해 불린 쌀을 몇 분 만에 떡으로 쪄내는

‘스팀 압력 떡 증숙기’였습니다.

 

(칠갑농산의 떡 증숙기. 출처=칠갑농산)

 

경기 파주와 충남 청양에 있는 칠갑농산 공장에 가면

기계 한 대당 3분마다 최대 60㎏의 떡을 뽑아내는

이 기계를 볼 수 있는데요.

 

이능구 회장이 “대형 식품업체와의 경쟁 속에서도

칠갑농산이 40년 가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이 기계 덕분입니다”라고 말하며 보물처럼 아끼는 기계죠.

 

1980년대 중반 처음 개발된 이 기계는

이후 30여 년간 끊임없는 개량과 보완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성능을 갖추게 되죠.

 

그리고 이 증숙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설계한 인물이 바로 이능구 회장이었습니다.

증숙기 도면을 직접 그려 기계 제작업체에 넘겼던 건데요.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기계공학과

설계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던 그가

복잡한 기계의 도면을 대략적이나마 그릴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일하며 쌓은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몇 년 동안 지인과 함께

보일러와 수도 배관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작은 건설‧설비업체를 운영했었는데요.

 

당시 현장에 나가 공사를 감독하면서

회사 직원들한테 기계 설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여러 부품들이 각각 어디에 쓰이는지를 배울 수 있었죠.

 

덕분에 현장에 필요한 떡 생산 기계를 구상하고

설계할 정도의 실력은 쌓을 수 있었던 것이죠.

 

다른 떡 공장들에선 시루로 쪄서 떡을 만들던 시절에

스팀 압력으로 대량의 떡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스팀 압력 증숙기를 갖게 된 덕분에

칠갑농산은 경쟁업체들보다 더 싼 비용으로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사업 초창기 칠갑농산이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칠갑농산의 쌀떡 생산 장면. 출처=칠갑농산)

 

그리고 이능구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칠갑농산만의 생산 기계를 만드는 데

큰 금액을 투자했습니다.

 

떡을 팔아 번 돈의 대부분을

생산 설비에 투자했던 거죠.

 

현장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계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내고

또 기존 기계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개조 작업을 했던 건데요.

 

(이능구 회장. 출처=칠갑농산)

 

“솔직히 어떨 때는 공장 설비와 기계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게 무모한

일이라고도 생각했었어요”

 

“기계 하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중간 제작 단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불량품들을 내다 버려야 했거든요”

 

“수억원을 들여 만든 기계가 애초 생각과는 달리

제대로 작동을 안 해 고물상에

팔아넘겨야 했을 때도 있었고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설계도까지 그려가면서

수없는 실패 끝에 만든 기계를

업자들이 그대로 베껴서 다른 곳에 팔아버릴 때면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하는 절망감까지 들었죠”

 

“하지만 결국 그렇게

계속 생산 설비에 투자했던 게

칠갑농산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에요”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계속해서 기계를 개조해나간 덕분에

이제는 다른 업자들이

따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졌고요”

 

“또 기계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아주 세밀한 노하우까지 터득하게 됐죠.

지금은 누가 우리 기계를 가져간다고 해도

절대로 똑같은 건 못 만든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이처럼 칠갑농산은 끝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대기업 계열 식품회사들을 비롯한

경쟁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2. 탁월한 제품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것은

제조업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데요.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조건이죠.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선 생산 비용을 늘릴 수밖에 없고

결국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능구 회장은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칠갑농산이 생산하는 메밀국수는

회사의 주력 상품 중 하나입니다.

 

고급 호텔 일식당에서도 꾸준히 사용할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죠.

 

이 메밀국수가 오랜 시간 동안 인기를 끌 수 있는 건

경쟁 상품에 비해 메밀 함량이 높기 때문인데요.

 

(칠갑농산의 메밀국수 생산 장면. 출처=칠갑농산)

 

메밀은 밀과 쌀에 비해 반죽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국수로 뽑은 뒤 건조하는 과정도 까다로운 편입니다.

 

면에 메밀을 듬뿍 넣고 싶다고 해도

기술력이 없다면 마음대로 넣을 수가 없죠.

 

칠갑농산은 1980년대 초반부터

쌀 가공식품을 만들면서 축적해온 기술력 덕분에

국수에 들어가는 메밀 함량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밀을 넣을 때도 메밀의 좋은 영양분을

더 많이 담기 위해서 생메밀을 볶은 뒤

빻아서 만든 가루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겨났습니다.

메밀을 너무 오랜 시간 볶으면

메밀의 영양분이 파괴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까지만 볶았는데요.

 

이렇게 적절한 시간만 들여 볶아낸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들면 우리가 흔히 아는 까무잡잡한

색깔의 면발이 나오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볶아내 조금은 타서 거무스름해진

메밀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야만

짙은 색감의 메밀국수를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영양분이 더 많이 담긴 메밀국수라고 해도

면발의 색깔이 옅은 갈색이라면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는데요.

 

여기서 이능구 회장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맛과 영양을 택하면 상품을 시장에서 팔기가 힘들어지고,

많이 파는 걸을 택하자니 소비자들에게

맛과 영양이 떨어지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능구 회장은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제3의 해법을 찾아내는데요.

 

바로 검은 쌀, 그러니까 흑미를 넣어

국수를 뽑아내는 거였습니다.

 

검은 색깔의 흑미를 섞으면

메밀을 더 볶지 않고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검은 빛깔의 메밀국수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죠.

 

(흑메밀냉면. 출처=칠갑농산)

 

그런데 메밀국수에 흑미를 넣겠다는 결정을 하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하나 또 생겼습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곧바로 다른 문제가 뒤따라오는 건

회사를 경영하면서 항상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흑미를 섞어 국수를 만드는 해법의 걸림돌은

바로 흑미의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흑미는 그냥 쌀보다 가격이 몇 배는 더 비싼데요.

아무리 대량 구매를 통해 구매 가격을 낮춘다고 해도

흑미를 넣어서 국수를 만들면 경쟁 상품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뛰어난 품질의 상품을

만들 순 있지만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걸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죠.

 

그리고 이능구 회장은 이 문제를 직접 농사를 지어

흑미를 수확하는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현재 칠갑농산은 충남 청양에서

약 8000평 규모의 직영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중 흑미 재배 면적은 2000평이고요.

배추는 2000평, 보리는 4000평에 달합니다.

 

칠갑농산은 만두를 만들 때 만두 속에 들어가는

배추김치를 직접 담가 마련하고 있는데요.

직영 농장에서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만두 제조 공정. 출처=칠갑농산)

 

미숫가루 등의 원료로 들어가는 보리 역시

농장에서 수확한 보리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능구 회장의 부인인 유순식 여사가

농사철이면 청양군 농장에 눌러살면서

농장 일을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재료를 외부에서 사들일 때보다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고,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재료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제품이니까

비싸도 사주세요’라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해봤자

먹히지 않는다는 게 이능구 회장이

반세기 가까이 사업을 해오면서 배운 교훈입니다.

 

3. 작은 시장의 1등은 소용없다

 

스팁 압력 떡 증숙기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능구 회장은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설비‧기술 개발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인물인데요.

 

쌀 가공식품이 오랫동안 상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기술은

사업 초창기에 그가 가장 갖고 싶었던 기술이었습니다.

 

칠갑농산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떡, 국수 등의 유통기한은

길어도 채 열흘이 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건조하지 않은 생면(生麵)은 하루만 지나도

쉬어버려서 공장에서 가까운 지역이 아니고선

애초에 팔 수조차 없었습니다.

 

(국수건조실. 출처=칠갑농산)

 

열흘밖에 되지 않는 유통기한을 늘리지 않고선

칠갑농산을 비롯한 국내 업체들의 쌀 가공식품 판매가

늘어나길 기대할 수 없었는데요.

 

산 지 며칠만 지나도 먹을 수 없게 돼버리는 식품을

소비자들이 좋아할 리는 없었으니까요.

 

방부제를 넣으면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긴 했지만

방부제가 잔뜩 들어간 식품을 소비자들이

굳이 사 먹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떡과 국수 같은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이능구 회장의 눈이 번쩍 뜨인 건 일본에서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그는 정부 지원을 받아

국내 쌀 가공업체 임직원들과 함께

일본 식품회사들을 찾아가는데요.

 

이곳에서 일본 회사들이 만드는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은 세 달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똑같이 쌀로 만든 식품인데

유통기한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던 거죠.

 

이능구 회장은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식품 전문가들을 찾아다니고

직접 관련 연구문헌들을 뒤적이면서

일본 업체들이 만든 쌀 가공식품이 몇 달 동안

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는데요.

 

그런 과정을 통해 일본에서는

술의 원료인 주정을 활용해 식품을 살균 처리해

유통기한을 늘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능구 회장. 출처=칠갑농산)

 

“일본에서 주정을 살균제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하면 주정을 구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봤어요”

 

“그런데 주정을 구하려면 수입하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세무서에서 몇 번이나 수입 허가를 안 내주더라고요.

주정에 물만 타면 바로 술이 되니까

함부로 허가를 안 내줬던 거죠”

 

“간신히 주정을 수입하긴 했는데

막상 갖고 오니까 이번엔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몇 달 동안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주정을 분무기에 넣어서 제품에 뿌려도 보고,

제품 반죽에 넣어보기도 하고,

완성된 제품을 주정에 살짝 담갔다 빼기도 하면서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를 직접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시도와 실패 끝에 이능구 회장은

주정침지법을 개발하는데요.

 

이 방법은 식품의 겉면을 주정으로 코팅해

살균 효과를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게 유통기한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 주정침지법을 통해 이능구 회장은

쌀떡, 수제비, 국수, 냉면, 칼국수면 등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방부제를 활용하지 않고도

3~5개월까지 늘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냉면 면과 반건조 국수면의 유통기한은

하루에서 수개월로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칠갑농산은 경기 파주 공장과 가까운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으로

판매망을 넓혀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능구 회장이 출원한 주정침지법 특허 문서. 출처=칠갑농산)

 

그리고 얼마 뒤 이능구 회장은

한 가지 결단을 내리는데요.

 

주정침지법 기술을 다른 식품업체들도

무상으로 쓸 수 있게 한 것이죠.

 

주정침지법 특허의 소유권을 식품 관련 협회에 넘겼습니다.

자신이 공들여 개발한 특허를 경쟁자들에게 제공한 건데요.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능구 회장. 출처=칠갑농산)

 

“주정침지법 특허를 저희 회사만 계속 사용한다면

칠갑농산 혼자 돈을 잘 벌 수는 있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계가 있어요”

 

“그 당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는 ‘쌀로 만든 식품은

며칠 지나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있었죠.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쌀 가공식품을

팔아야 얼마나 팔겠어요. 아주 작은 시장이죠”

 

“제가 갖고 있는 특허를 풀어야 다른 업체들도

유통기한이 오래가는 상품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시장도 훨씬 커질 수 있죠”

 

“좁은 시장에서 혼자 1등을 하는 것보다

일단 시장을 넓히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회사는 기술력이 있으니까 넓어진 시장에서도

계속해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고요”

 

이능구 회장의 예상대로 주정침지법 기술이 보급되면서

쌀 가공식품 시장은 물론 식품업계 전체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유통기한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덕분에 쌀 가공식품 시장의 규모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요.

 

시장이 커지면서 선두 기업인 칠갑농산의

매출과 이익도 늘어났죠.

 

‘시장의 크기를 넓히는 건 1등 기업만 할 수 있다’는

게 이능구 회장의 말인데요.

그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이를 행동으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해외 슈퍼마켓에 진열된 칠갑농산 제품. 출처=칠갑농산)

 

이번 글에서는 기술 개발, 원가 절감, 시장 확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의

경영 사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이나모리 가즈오 같은 ‘경영의 신’들의 사례가 연구되고

관련 책들이 계속해서 팔리는 건

시대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강한 기업을 키워낸

창업자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에 쌀떡 봉지를 가득 싣고

서울 서교동 오르막 언덕길을 오르던 이능구 회장이

50년 가까운 세월을 거치며 연 매출 680억원의 회사를

일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이 독자분들께서

강한 기업을 키워낸 창업자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 업무와 일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길 바라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능구 회장. 출처=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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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홍선표

출간 26일만에 3쇄를 찍은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을 통해 경제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31가지 키워드를 만나보세요.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 유튜브 '홍선표의 고급지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