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400억원 빚을 꾸역꾸역 갚은 사나이

요즘 인상깊게 읽은 책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인데요.

 

빚더미에 오른 중소기업 사장이

무려 16년간 빚을 갚은 이야기입니다.

 

참1

(사진=한빛비즈)

 

“중소기업 사장 치고 빚없는 사람없다”는

업계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며

꽤 몰입해서 봤습니다. 

 

이야기는 유자와 쓰요시씨가

부친 장례식을 치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 외식점포와

건물을 운영하던 이른바 자수성가형 사업가였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풀리지 않으면서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됐는데요.

 

그 뒷수습을 아들인

유자와 쓰요시씨가 해야 했죠.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데

채권자들이 찾아와 밀린 빚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묻고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직원들이 찾아와 밀린 결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묻더라 이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졸지에 

‘후임 대표이사’가 된 것이죠. 

 

그는 회사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란 무서운 존재였고

평소 교류를 활발하게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사무실로 찾아가

회사 손익계산서를 보니

연 매출은 200억 가량 하고

손익구조는 약간 적자인 상태.

 

음..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문제는 재무상태표.

부채총액이 무려 400억원이었던 겁니다.

 

참3

 

과거 빚을 지면서 건물과 가게를 샀던 게

장사가 안되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죠.

 

그는 숫자를 보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회사를 빠듯하게 운영해서

매년 4~5억원씩 이익을 남긴다고 해도

전부를 갚으려면 80~100년 걸립니다.

 

말도 안되는 시간이죠.

 

유자와 쓰요시씨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회사를 물려받기로 결정했는데요.

 

(사진=유사와 쓰요시)

(사진=유사와 쓰요시)

 

연대보증인은 아니었지만 자신마저 손을 놓는다면 

직원들 직장 잃고 거래처 부도 나고

무엇보다도 장남으로서 아버지 이름을

먹칠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일종의 책임감이랄까요? 

 

(사진=유사와 쓰요시)

(사진=TV 프로그램에 나온 유사와 쓰요시와 아버지)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파산이나

기업회생과 같은 개념이 생소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결정이 무모하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려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추심전화를 받아야 했고

압류를 막기 위해 각서를 들고

국세청, 금융기관으로 찾아가 읍소를 해야 했습니다.

 

가족과 밥을 먹는 순간에도 매 시간

몇십만원씩 이자가 나간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게다가 회사는 풍비박산 상태가 돼

조직과 인재가 전무하다시피 했는데요.

 

어제 뽑은 직원이 무단결근을 하고

서빙하는 알바생이 손님과 싸우고

요리사가 휴게실에서 도박을 하는 일이 다반사.

 

결국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유자와 쓰요시씨의 커리어는 주류회사가 전부일 뿐

요식업에 대해선 A부터 Z까지 전혀 모른다는 것!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1년동안 어떻게든 발로 뛰고 노력해봤습니다만..

 

못볼 꼴만 계속 볼 뿐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인생을 비관하고, 상황에 절망하고,

얼굴을 찡그리고, 갑자기 화내고, 엉엉 우는 나날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름의 방법론을 찾은 유자와 쓰요시씨.

 

일단 하나라도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조금이나마 상황이 나아진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한 것은

어떻게든 유능한 매장점주를 육성하는 일.

 

요식업의 본질은

사람장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진=유사와 쓰요시)

(사진=유사와 쓰요시)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사람을

150만원 주고 쓰는 것보다

성실하고 의욕적인 사람을

300만원 주고 쓰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죠.

 

때로는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의기투합하고 

때로는 혼내면서 자기 사람을 키워냈고요. 

 

그 다음으로 사업구조를 효율화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매출을 내는 가게는

술집(이자카야)이었는데요. 포지셔닝을 명확히 했죠.

 

중장년 남성으로 대상 고객군을 정하고

중저가 전략을 밀고 나갔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1. 가성비가 좋으면 사람들이 몰리고

(-> 어쨌든 돈이 들어옴)

 

2. 비용을 통제하기도 쉽기 때문이죠.

(-> 인건비와 재료만 신경쓰면 되니까)

 

고객의 특성에 맞춰

가게 운영시스템도 대거 바꿨습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메뉴판 날려버리고 요리명을 벽에 쓴다던가

송년회나 환송회를 지원해준다던가

아재개그식 이벤트를 연다던가.

 

여기에 추가로 유자와 쓰요시씨는

과감하게 회사자산을 정리했는데요.

 

목 좋은 자리가 아닌 건물은

장부가액 10분의 1로라도 헐값처분했고요.

 

33개에 이르던 매장을

14개로 확 줄여버렸습니다.

 

그리고 목 좋은 자리에 있는 건물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파친코에 임대를 줬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가 힘들게 쌓아올린 사업을

아들이 말아먹는다며 욕을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매출은 22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줄어들었고

이익은 마이너스에서 10~20억원으로 올라갔죠. 

 

미래성장 대신 현금흐름을 택한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한지 16년째.. 

 

30대 중반의 상속자는

50대 초반의 경영자가 됐고

회사는 부채 대부분을 청산했습니다. 

 

업계 취재를 하다보면 

많은 벤처기업 사장님들이

빚을 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합니다.

 

초기 사업자금이 부족해서

생각보다 운영비가 많이 들어서

안정적인 수익모델이 부재해서

갑자기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가 터져서

계약체결 시 연대보증에 걸려서

개인적인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좀 더 과감하게 사업기반을 확장하기 위해서.

 

결국 가지고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쓰기 위함인데요.

 

(사진=영화 베니스의 상인)

(사진=영화 베니스의 상인)

 

분명 레버리지(차입경영)는 더 좋은 성과와

더 빠른 성장을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회사는 물론 대표이사의 인생마저 망가뜨리죠. 

 

이를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로 초기기업이라면

가급적 빚을 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냐면 실패 가능성이 80~90%에 이르니

부채를 갚지 못할 가능성 또한 동일합니다.

 

만약 자금이 부족하다면

가급적 지분투자를 유치함이 옳고

이 또한 어렵거나 망설여진다면

빠른 시간 안에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는

이른바 ‘부트 스트래핑’을 추구함이 옳습니다.

 

두 번째로 굳이 빚을 져야 한다면

적정 수준의 자산과 담보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레버리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나중에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회생의 발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농부가 지금 당장 굶어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데요.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만약 자산과 담보물이 전혀 없다면

부채탕감의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그렇다면 적정 부채비율은?

 

업종마다 상황이 다 다르겠지만

전문가들은 가급적 200%를 넘지 말길 권유합니다.

 

세 번째로 다른 것은 몰라도

대표이사 연대보증과 불법사채는 피해야 합니다.

 

인생을 걸고 베팅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대표이사 연대보증은

신용불량자가 되는 지름길이며

불법사채는 파산신청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사진=영화 신세계)

(사진=영화 신세계)

 

네 번째로 절벽 앞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회사의 수명은 짧지만 인생은 깁니다.

언제든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원론적인 이야기일 테고요.

 

이미 빚을 많이 졌고

지금 당장 갚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자와 쓰요시씨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부분은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구상하거나

획기적인 재무개선 작업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16년이나 버티고 버티고 버텼을까,

어떻게 멘탈관리를 했을까에 대한 것입니다.

 

그그

 

“하루종일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길래

그래. 과연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정리해봤어요”

 

“결국 파산이더라고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

연대보증인 위치도 함께 물려받은 터라

파산 시 제 모든 재산이 압류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

조그만한 단칸방 월세 정도는 살 수 있더라고요”

 

“물론 거래처와 가족에게 미안한 일입니다만

죽거나 야반도주를 하진 않아도 됩니다”

 

“조그만한 단칸방 월세 정도는 살 수 있다고?

고작 이 정도 일에 불과했나?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그그

 

“이어서 딱 5년만 해보자 기한을 정했어요”

 

“이 기간만큼은 빚이 줄지 않더라도, 

아니 심지어 늘어나더라도 신경쓰지 않고

어떻게든 회사를 운영해보자는 것이죠”

 

“만약 5년이 지나도 성과가 전혀 없거나

불법사채에 손을 대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과감하게 파산신청하자고 생각했어요”

 

“정말 나는 할 만큼 한 거라고

아버지에게 도리를 다한 거라고”

 

그그

 

“고민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계속 문제가 터지기 마련인데요”

 

“지금 당장 무엇부터 처리해야할지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매일 사소하게 터지는 이슈는 당면과제로,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슈는 근본과제로 분류했습니다”

 

“당면과제는 항상 회사 사무실에서,

근본과제는 특정 기간 특별 회의실에서 처리했는데요”

 

“의사결정방식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그

 

“마지막으로 심리상태를

최대한 안정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정신으로 일해야 더 잘할 수 있고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저는 물론 가족과 직원도 힘들어하니까요”

 

“이를 위해 매일 매일

제 심리상태를 파악하려고 애썼습니다”

 

“거울보면서 머리를 만지듯이 말이죠”

 

“만약 우울하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오늘은 말조심하자,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딱 이것만 처리하고 들어가자 되새겼죠”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말은 삼갔어요”

 

“이것은 최대한 습관을 들이려고 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면 바로 바꿔서 말했습니다”

 

“집에서 영화나 음악감상도

기분을 다운시키는 것이 아닌

힘을 낼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보고 들었고요”

 

“정말 답답하다 싶으면 우주를 생각했어요”

 

“드넓은 세상에 나란 존재는 어차피 티끌인데

뭘 그렇게 힘들어하고 뭘 그렇게 괴로워할까”

 

“그러면 괜히 초연해지고 달관하게 되더라고요” 

 

(참조 –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참조 – 주식회사 유사와 홈페이지)

 

(참조 – 대표이사 홈페이지)

 

(참조 – 대표이사 페이스북)

 

(참조 – 이상민이 구체적으로 69억원 채무자가 된 사연)

 

(참조 – 초기기업이 생존자금을 마련하는 열 가지 방식)

 

(참조 – 절벽 앞에서 스톱이라 외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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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와낫

    저도 이 책 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저 분이랑 비할 정도의 스케일은 아니지만 벌였던 여러 사업과 프로젝트를 모두 중단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그 손실을 메우며 버티고 살아왔네요. ㅎㅎ 멘탈 관리 측면에서 굉장히 큰 힘이 되고 위로를 받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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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용식 기자

최용식 기자

안녕하세요. 최용식 기자입니다. 기업 및 산업에 대한 기사를 자주 쓰고요. 사람과 돈의 흐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