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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가진 게 적을 때 성과를 내는 마윈의 3가지 전략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몇 년 지나면 베이징이 나한테 이러지 못할 거야. 몇 년 후에는 모두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될 거야” 1995년 겨울, 중국 베이징에서 남부 항저우로 떠나는 고속버스 창문에 얼굴을 기댄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내뱉은 말입니다. 그 몇 개월 전 마윈은 중국 최초의 상업 인터넷 사이트인 '차이나페이지'를 개설하고 자신의 고향인 항저우에서 막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호텔, 수출 업체, 지방정부 기관 등 해외 고객에게 자신들을 알릴 필요가 있는 곳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회사였죠. 처음엔 회사에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개발 인력도 없어서 마윈과 회사 동료들이 일감을 따오면 그 내용을 미국 시애틀에 있는 협력사에 보내 홈페이지를 제작한 뒤 돈을 나눠 가졌습니다. 영어 강사 출신으로 영어를 원어민만큼 잘하는 마윈이 홈페이지에 들어갈 내용을 영어로 작성한 뒤 사진과 함께 미국 시애틀에 국제 우편으로 보내면 미국인 개발자들이 이에 따라 홈페이지를 만드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원시적’인 방식이었죠. 오늘날에는 한 해에 63조원가량의 매출(2018년 기준‧3768억 위안)을 올리고, 매년 11월 11일 열리는 온라인 세일 이벤트인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엔 자사 쇼핑몰에서 하루에 약 44조원(2019년 기준‧2684억위안) 어치의 상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IT기업이지만 그 시작과 전신은 이처럼 보잘것없었던 건데요. 1995년의 '차이나페이지'를 보고 지금의 알리바바를 그릴 수 있었던 사람은 마윈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1995년 가을 그는 베이징에 있는 중앙정부 부처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서 홈페이지 주문을 수주하고, 자기 회사를 알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베이징으로 올라옵니다. 항저우에서 지방정부 홈페이지를 성공적으로 만든 덕에 지역 신문에도 연달아 소개되는 등 나름대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수도 베이징에 진출해 사업을 키우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는 “중국의 야후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의 중앙 부처 공무원들과 공산당 간부들에게 마윈은 인터넷이라는 수상쩍은 물건을 들고 찾아온 사기꾼 혹은 잘 봐줘봤자 잡상인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이야 ‘중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당시만 해도 베이징에서 마윈은 작고 볼품없는 ‘촌놈’으로 보였습니다. 중국 최초의 상업용 웹사이트인 '차이나페이지'가 만들어진 게 불과 몇 달 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죠. 결국 486 노트북 한 대와 홍보자료 한 다발을 들고 큰 꿈에 부풀어 올라왔던 마윈은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요. 마윈은 훗날 이 시절을 떠올리며 “베이징을 떠도는 동안 맨바닥에서 잠을 잘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홍선표
2020-02-19
알리바바는 어떻게 '사스위기'를 기회로 바꿨을까
*이 글은 36kr 기사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현재 중국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 모든 시민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론 산업 전체가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기업들이 버티기 힘들다며 읍소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런 모습은 2003년의 사스사태 때와 매우 닮아있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사스사태를 거치고 오히려 크게 성장한 기업도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현재 중국 시총 1위인 알리바바입니다. 이번 기사는 알리바바가 어떻게 '사스'라는 위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는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격리의 시작 2003년 5월 초의 어느날 아침, 알리바바 최초의 외국인 임원인 포터 에리스만은 부하직원 장푸(张璞)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포터, 내일 출근 안하셔도 됩니다" 포터는 바로 이 말의 의미를 알아챘습니다.
36kr
2020-02-14
손정의가 고른 스타트업 대표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글은 비즈니스 인사이더 프라임 기사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소프트뱅크 CEO 겸 비전펀드 책임자면서 억만장자인 손정의(손 마사요시)는 실리콘밸리의 ‘킹 메이커’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평가액을 기록한 테크 스타트업에 억 단위 투자를 하고 있죠. 최근 스스로 붕괴한 오피스 공유 기업 ‘위워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투자가 늘 잘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고 웅변에 능한 애덤 뉴먼이 창업하고 이끌었던 위워크를 통해, 다른 곳과는 다른 소프트뱅크 투자 전략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뉴먼의 여러 특징이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은 다른 스타트업의 기업가에게도 발견되거든요. 고의인지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명 ‘마사’라고도 불리는 손정의는 특정 타입에게 돈과 믿음을 계속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실리콘밸리 투자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사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딱 그런 류의 사람에게 투자해왔습니다" “거창한 비전, 비대한 개성, 거대한 자아(에고)를 지닌 사람들이요" “그래서 포트폴리오가 그렇게 구성된 겁니다" 손정의가 선호하는 타입은 이렇습니다. 거의 언제나 남성이고, 대개 중년이고, 손정의 자신과 같은 특징을 상당수 갖고 있습니다.
2019 윈치대회 : 마윈의 DT에서 장융의 DI시대로 넘어가다
*이 글은 36kr 기사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지난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알리바바의 연례 최대 개발자대회인 *윈치대회(云栖大会)가 항저우에서 열렸는데요. 올해 10주년인 윈치대회는 중국 최대 규모의 테크포럼이자 중국 IT기술발전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집니다. 3일간의 일정 속에 백여 개의 세션토론이 열렸고 세계 최첨단의 기술과 이념 및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NVIDIA, 싱가포르텔레콤, 인텔, 도시바, 션저우(神州)디지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글로벌 정상급 테크기업들이 이번 대회서 자신의 최신기술과 제품을 내놨죠. 알리바바도 매년 윈치대회 때마다 새로운 이념 혹은 제품들을 발표하는데요. 2016년엔 마윈이 그 유명한 신소매(新零售)개념을 내놓으면서 알리바바의 오프라인 진출을 선포했고 (참조 - ‘신소매’라는 이름으로 알리바바가 벌이고 있는 사업들) 2018년엔 핑터우거(平头哥)란 이름의 반도체회사 설립을 공개했으며 올해도 새로 출시한 인공지능 칩을 공개했죠. 이번 윈치대회는 마윈 퇴임 후 장융(张勇)이 처음으로 회장 신분으로 출석한 알리바바 공식 행사인데요.
36kr
2019-10-07
'냉장고를 없애겠다'는 마윈의 비전을 실현시키고 있는 '허마셴셩'
*이 글은 외부 필자인 이미준님의 기고입니다. 중국 이커머스의 역사를 바꾼 마윈이 알리바바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하고 자신의 작은 사무실로 돌아갔죠. 창업한 첫 사무실로 돌아가서 초심을 되새기는 게 정말 멋져 보였는데요. (참조 - 알리바바 떠난 마윈... 처음 시작했던 작은 아파트로 돌아간 이유) 마윈이 온라인 쇼핑 역사에 남긴 족적은 굉장하죠. 국내에서는 알리바바가 2014년 미국에 역대급 금액으로 IPO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오프라인 중심이었던 국내 유통사들에 아마존과 함께 온라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줬습니다. 특히 그해부터 휘몰아친 ‘광군제’의 파워는 앞다퉈 중국 역직구몰 진출을 하게 만든 촉진제가 되었죠. 게다가 알리페이를 앞세워 결제시장까지 장악한 전략은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힘을 알게 해준 것도 알리바바였고요. 이 외에도 마윈은 신기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비약적인 발전으로 항상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했습니다. (참조 - 알리바바 대박 상장… 수년간 年30~40% 성장해야 주가 유지) 신유통과 허마셴셩 저도 관련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많은 관심을 가졌고, 충격 혹은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수많은 서비스와 놀라운 기록 중 무엇보다 ‘신유통’과 그 사례인 ‘허마셴셩’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유통이란 마윈이 주창한 개념으로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물류 유통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미준
2019-09-25
마윈 은퇴를 보고 떠오르는 단상.. 그는 진짜 외계인이었을까
*이 글은 우샤오보채널 콘텐츠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예전에 마윈과 한번 만난 적 있는데요. 외계인(E.T)과 너무 닮아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와 악수도 했었는데 살결은 귀부인처럼 부드러웠지만 손의 힘은 꽤나 세더라고요. 마치 비단 속에 철이 있다고나 할까.. 후에 이 에피소드를 *수상을 아는 사람에게 말했더니 그는 바로 마윈이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사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뛰어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요. 첫째는 타이밍이 맞았는가, 둘째는 시장규모가 큰 사업을 하는가, 셋째는 큰 야망을 가졌는가입니다. 마침 마윈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한 사람이었죠! 오늘(9월 10일)은 마윈의 생일이자 알리바바 창립 20주년 되는 날인데요. 오늘 이 글을 빌어 축하를 전하는 동시 마윈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깊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샤오보
2019-09-19
알리바바가 세계 석학에게 물었다. 인류 미래에 대한 10개 질문!
뤄한탕(罗汉堂)은 알리바바가 2018년 6월에 설립한 씽크탱크인데요. 주로 사회, 경제, 심리학 문제를 연구하는 공익목적으로 설립한 기관입니다. 알리바바 회장 마윈은 지난 6월 25일 뤄한탕 설립 1주년을 맞아 전세계 200여명의 석학을 모시고 디지털경제에 대한 심층 토론을 진행했는데요. (참조 - 마윈이 전세계 석학과 토론하는 영상) 이 토론의 결과물로 "인류 미래에 대한 10개 질문, 세계 석학이 답하다"는 제목으로 토론 내용을 정리해 언론에 발표했죠. 이번 기사는 그 내용을 번역해 공유드립니다. 1. 리스크를 줄이는 것과 디지털기술의 빠른 발전, 어느 것이 우선일까요? (*마이클 스펜스) *미국 경제학자 '정보가 비대칭을 이룬 시장에 대한 분석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디지털경제가 가져올 혜택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측정하긴 어렵습니다. 따라서 리스크와 수익을 따지기도 힘들죠.
마윈을 꼰대로 만든 '996 논란 글'을 번역해봤습니다
중국 최대 IT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비단 기업경영에 탁월할 뿐만 아니라 대중앞에서 연설하는 능력도 대단한데요. 그가 각종 행사에서 연설한 내용은 '마윈어록'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창업자,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고 중국에서는 '마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하죠. 그러던 그가 최근엔 '꼰대'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데요. 사건의 발단이 그가 최근 '996'에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연설문을 공개한 것입니다. *996이란 아침 9시 출근, 저녁 9시 퇴근, 일주일에 6일 근무하는 제도를 가리킴. 2016년, 58퉁청(58同城)이란 회사가 '996'을 전사적으로 시행한다고 했다가 중국 언론에 공개되면서 처음으로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됐었죠. 지금은 중국 IT기업의 야근문화를 통칭하는 개념이자 신조어로 등극했습니다. 살인적인 업무량과 합당하지 않은 보상으로 네티즌과 중국 관영언론이 996을 비난하는 가운데 마윈은 996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죠. 그래서 저도 바로 원문을 읽어봤는데요. 이번 기사에는 논란이 된 마윈의 996 관련 글 2편을 모두 번역해 공유드립니다. *아래 내용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윈의 발언 및 포스팅 내용을 편집했고 분문 중 ‘저’, ‘저희’, ‘우리’는 마윈, 알리바바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996은 축복입니다(1편)
알리바바엔 마윈이 없어도 그들이 있다
9월 10일,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내년에 은퇴한다고 밝혀 큰 화제가 됐었는데요. 가장 큰 논쟁은 아무래도 마윈이 없이 알리바바가 계속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죠. 사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마윈은 이미 2013년에 그룹 CEO에서 물러나며 경영일선에서 빠졌다는 것입니다. 이후 마윈은 알리바바의 전략과 이념을 다양한 공개 장소에서 설파하는 역할을 했을 뿐 회사 운영에 크게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죠. 사실 2015년 장융이 그룹 CEO로 임명된 후 알리바바는 모든 핵심 비즈니스에서 세대교체를 이뤘으며 이들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는데요. 오늘 기사에서 이 알리바바 2세대 주역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융(张勇) 그룹 CEO 및 차세대 리더 입사연도 : 2007년 8월 출생연도 : 1972년 1월 11일 2013년 마윈이 CEO 자리서 내려온 후 알리바바를 실제 이끌어왔던 인물이고 마윈의 후임자로 지목됐죠. 중국 언론에서는 흔히 '마윈이 전략을 세우면 장융이 실행한다'고 표현하는데요. 마윈이 공개석상에 많이 참석하고 수많은 강연으로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되는 반면 장융은 회사 CEO지만 언론에 거의 안 나옵니다. 마윈은 비져너리에 가깝고 장융은 은둔의 경영자에 더 가깝죠. 장융은 마윈이 지목한 차세대 알리바바 리더로 마윈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데요. 오늘 발표한 은퇴계획에도 장융에 대한 무한신뢰를 밝혔죠.
마윈 '과학자와 기업가는 완벽히 결합해야 합니다'
알리바바 회장 마윈의 연설은 매번 할때마다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지난 5월 말 중국 과학자협회 연례행사에서 중국 최고의 과학자들 앞에서 과학기술의 미래와 기업과의 관계에 대해 자기 의견을 피력했죠.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있는 인공지능, IOT, 블록체인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이날 마윈 연설 주제는 '믿기 때문에 볼 수 있다 (因为相信,所以看见)'였는데요. 과학자와 기업가의 연관성과 미래 사회에서 역할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줬죠. 아래는 연설문 전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오늘 저희 고향 항저우에 오셔서 감사합니다. 1999년 첫 회 '과학자협회 연례회의'가 항저우에서 열렸을 때 알리바바도 마침 항저우에서 설립됐죠. 저는 과학기술 발전이 이렇게 빠른데 대해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알리바바의 발전은 과학기술 발전의 혜택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는 기업인으로서 이런 대회에 초대받은 것에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과학자와 기업가가 일맥상통한 부분 저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나 과학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마윈과 마화텅도 숭배했던 남자 이야기
이번엔 어떤 재미난 중국 이야기를 아웃스탠딩 독자들에게 보여주지? 이렇게 고민하고 서핑을 할 때 갑자기 이런 뉴스가 눈에 띄더군요. 바로 서우후(소후닷컴,搜狐) 20주년! 서우후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 IT업계 1세대 거두이며 유명한 4대 포털 중 하나입니다. 서우후 20년은 중국 인터넷 발전의 20년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 서우후를 이끄는 사람이 중국 IT 업계 레전드로 불리는 장차오양(张朝阳)입니다. 엘리트중의 엘리트 장차오양은 1964년 생으로 샨시성(陕西省) 시안(西安) 출신입니다. 1986년 중국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칭화대(清华大学)를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MIT에 유학을 갔죠. 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후를 하던 중 중국 IT 시장의 기회를 발견하고 1996년 중국에 돌아와 창업했는데요. 이때 만든 회사명이 ITC였고 1998년에 서우후로 개명했죠. 해외파 출신의 개발자에 뛰어난 사업감각을 겸비한 장차오양은 중국 1세대 IT 창업가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알리페이는 알리바바 소유가 아니다?
알리페이는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명동, 신사역, 홍대 등 번화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사실 알리페이는 신용카드 대안으로 고안됐는데요. 중국에선 낙후된 금융 인프라 탓에 신용카드 활용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리페이는 전세계 각지에서 쓰이고 단순 결제수단을 넘어 종합금융서비스로 나아가려 하죠. 한국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지난 2월 카카오페이에 2300억원(2억 달러)을 투자했으니까요. (참조 - 카카오페이, 알리페이 2300억 투자 유치..몸집) 참고로 지난해 알리페이 모회사 앤트파이낸셜이 투자를 받았을 때 책정된 기업가치는 무려 65조(600억 달러)! 현재 카카오 시총이 10조 정도 됩니다. 차이가 어마어마하죠. ㅎㅎ 일각에서는 앤트파이낸셜이 상장할 경우 알리바바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한 입 거리 해외 IT 소식
“자, 잠깐 이것만 먼저 처리하고…” “해외 소식은커녕 국내도 못따라잡아요ㅠㅠ” 이런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일주일 동안의 해외 스타트업 이슈 7~9개를한 입 거리로 소화하기 쉽게 보여드립니다.! 1.무시무시한 아마존 알렉사 크루2.“퀀텀컴퓨터에 힘 실을 것”...MS 이그나잇3. 소프트뱅크 ‘역대급’ 비전펀드, 하지만?4. 미국 대통령 vs. 글로벌 플랫폼 페이스북5. 젠슨 황 “무어의 법칙은 틀렸다”6. 런던에서 정지먹은 우버7. 마윈 “성공적인 리더는 EQ, IQ, ‘LQ’ 갖췄다” 2017년 9월 넷째 주 1.무시무시한 아마존 알렉사 크루 아마존이 2017년 9월 27일(현지 시간)하드웨어 행사를 열었습니다. 다섯 가지 발표를 했죠. 1) 새로운 에코 스팟(130달러, 약 15만원) 알람 시계처럼 생겼는데 2.5인치 화면이 있어요.일정 확인, 마음 안정용 문구 띄우기(ㅋㅋ),전화 걸고 받기, 원격진료 용도 정도로 상상했습니다. 2) 새로운 에코 플러스(149달러, 약 17만원)디자인은 기존과 같은데요.허브 기기로서의 방향성을 보여줬습니다. -구매하면 필립스 휴 전구를 함께 주고요.-실제 행위와의 연결이 쉬워졌습니다.“알렉사 좋은 아침!”하면 불을 켜거나스마트 창문을 밝혀주는 등 액션으로 연결되죠. 3) 에코는 작고 예뻐졌고요(99달러, 약 11만원).크루가 생겼습니다. 기존 전화기의대체품인 에코 코넥트(35달러, 약 4만원),게임기 버튼으로 사용될 두 개 세트,에코 버튼(20달러, 약 2만원)도 생겼네요.
장혜림
2017-09-29
양쯔강악어(알리바바)는 바다상어(이베이)를 어떻게 잡았을까
알리바바, 최악의 시기를 겪다 알리바바에게 2001년은그야말로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닷컴열풍에 힘입어 일본 IT업계 거물인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200억원을 투자받는 등 차세대 이커머스 주자로서 기대를한 몸에 받았지만마윈의 어설픈 경영판단은모든 것을 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용자 확충을 모색하는 동시에글로벌 비즈니스 인프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성공에 허파 바람 찬 창업자 마냥 사무실을 좋은 곳으로 옮겼고수많은 해외지사를 세웠으며고스펙 인재를 대거 뽑았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이것은 수익성 및 재무상태 악화로 이어졌죠. 알리바바는 어쩔 수 없이고강도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볼까요? 이와 관련해 마케팅 총괄이었던 포터 에리스만은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죠. "마윈은 늘 자신감에 넘쳤어요.하지만 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알리바바 '마윈'이 극복한 8번의 뼈아픈 실패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발명왕 에디슨이 2000번의 실패를 거쳐 전구를 발명한 일화로 잘 알려진 말인데요. 알리비바의 마윈(马云, Jack Ma)도 수많은 실패를 거름 삼아 전자상거래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 재무, 인터넷을 전혀 몰랐던 창업 초기부터 알리바바 회원과 직원들이 연루된 사기사건까지, 마윈이 겪은 8번의 실패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스압주의!!!) 1. 초보 사업가, 첫 창업의 쓴잔을 마시다. 1992년 항저우. 28살의 잘나가던 대학 영어 강사 마윈은 영어 통번역 회사 ‘하이보(hope)번역사’를 차립니다. 덩샤오핑이 외국 자본에 중국 시장을 개방한 여파로 당시 중국은 영어와 무역에 능통한 인재가 높은 대우를 받았고, 마윈은 이를 사업 기회로 포착한 것이죠. 마윈은 3000위안(약 52만)의 자본금으로 창업에 도전. 사무실을 얻고 5명의 직원을 고용합니다. 너무 순진한 첫 창업이었을까요? 사무실 임대료가 매달 1500위안씩 나가는 상황에서 회사의 초기 월매출은 고작 1000위안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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