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덜링(data dulling)'.. 세상 사는 게 조금 재미없어진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선우님의 기고입니다. 1995년 8월이었어요. 캐나다 밴쿠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어요. 우리는 로키산맥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예약도 없이 즉흥적으로요. 그냥 아침에 일어나 아반떼만 한 차에 4명이 타고 떠났습니다. 그날 밤 로키산맥 속 재스퍼라는 곳에 도착해 숙소를 알아봤어요. 그런데 어디를 가도 빈방이 없다는 거예요. 잘 곳을 찾아 두세 시간 재스퍼를 헤맸지만 결국엔 찾지 못했습니다. 예약을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하는 수 없이 캠핑장에 갔어요. 15달러를 내고 캠핑 공간에 차를 주차한 뒤 세단에서 4명이 잠을 청했습니다. 한 여름이었지만 산속이라 추워서 중간에 두어 번 일어나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어야 했어요. 좁아서 제대로 자지도 못했죠. 차박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기 전 차박을 했던 셈입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땐 뿔 달린 순록이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밤사이 불편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이었죠. 공용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제가 다녀 본 여행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고 불편했던 하룻밤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룻밤이기도 했어요. 이젠 아무도 이런 여행을 다니지 않습니다. 모든 걸 사전에 예약하고 계획을 세워서 효율적으로 여행을 다니죠. 관련된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있는 덕분이에요. 모두가 정보를 최대한 이용합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갑작스런 돌발 상황과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