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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김바비란 이름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지금은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골목의 전쟁]과 [멀티팩터]를 썼습니다.
디즈니+의 강력한 IP는 약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디즈니+가 지난 11월 12일부터 국내에 정식서비스에 들어갔습니다. 디즈니 플러스의 정식 출시는 그 자체로 굉장한 화제가 되었죠. 많은 사람들이 벌써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서 마블이나 스타워즈 시리즈들을 보고 있으니까요. 현재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의 1위는 넷플릭스입니다만 디즈니 플러스가 본격화하면서 OTT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넷플릭스가 차지한 왕좌를 빼앗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정교한 예측을 위해 이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디즈니 플러스의 강점 누가 뭐래도 디즈니 플러스가 가진 최대의 강점은 바로 디즈니가 소유하고 있는 IP(Intellectual Property)들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 픽사,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일 IP인 마블의 히어로물, 그리고 국내에선 다소 인기가 적으나 미국 본토에선 가장 영향력이 큰 스타워즈가 여기에 해당하죠. 그 누구도 이 점을 부정하진 못할 겁니다. 바로 이 부분이 디즈니 플러스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니까요. 당장 2019년과 2020년에 만달로리언 시즌 1, 2가 공개되었을 때, 미국 OTT 시장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콘텐츠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디즈니가 가진 IP들의 파급력을 체감할 수 있죠. 만달로리언뿐만 아니라 올해 공개된 완다비전, 로키 등의 마블 드라마들도 굉장히 잘 만든 콘텐츠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IP에서 훌륭한 작품들이 나와준다는 게 굉장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죠.
김영준
12일 전
배달앱이 성장할수록 커지는 리스크 '배달기사 구하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2010년대 배달앱의 등장은 주요 자영업종인 음식점업과 더불어 상업 부동산의 지형을 뒤바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표현 그대로입니다. 배달앱이 배달이라는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기 때문이죠. 정확한 데이터는 없으나 2011년엔 전체 배달시장이 약 6조원, 2015년엔 배달앱 시장은 약 1조원 규모, 배달 시장 전체는 약 10조원 규모로 추정되었습니다. 그것이 2020년 기준으로는 배달앱 시장 약 15조원(업계 추산), 배달 시장 전체는 약 23조원 규모로 엄청난 성장을 이뤘죠. (공정거래위원회 추산) (참조 - 잘나가는 음식배달 시장… '레드오션' 빠지나) 물론 코로나로 인해 배달시장이 작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덕이 있지만 정말 대단한 성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0 외식업 경영실태 조사'에 따르면 외식업체 중에서 배달앱을 이용하는 곳은 19.9%입니다. (참조 - 2020 외식업 경영실태 조사 보고서) 이 말은 아직도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속화하는 배달기사 공급부족 현상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 배달앱 서비스는 심각한 취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라이더, 즉 배달기사의 부족 현상이죠. 배달앱 시장이 성장하면서 배달기사의 부족 현상 얘기가 나온 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사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배달앱이 막 등장하던 2011년 당시 배달시장이 6조원이었고 2020년엔 23조원이니 배달시장은 3.83배 성장한 것이죠. 이 때문에 산술적으로 계산한다고 쳐도 배달기사가 이전보다 3.83배 증가하여야 배달물량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김영준
26일 전
구미는 '각하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산업의 중심지가 됐을까?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구미는 산업화 시대를 이끌던 중심도시이자 내륙 공업도시로 이름 높았던 곳입니다. 1970년대에 구미 국가산업단지가 형성되며 섬유와 전자산업의 중심을 담당하고 수출을 이끌었던 곳이죠. 하지만 이런 구미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구미 공단의 형성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1960, 7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끌던 엘리트 관료 집단들이 철저한 준비와 조사를 통해 최적의 장소였던 구미를 중심지역으로 설정하고 산업단지로 키웠다는 설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이었던 구미를 집중적으로 밀어줬다는 설이죠. 보통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후자를 얘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좀 더 복잡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당시 산업단지 유치는 지역경제의 운명을 뒤바꿀 정도의 국가사업이었단 겁니다. 당시 구미는 인구 2만명에 농업 위주의 말 그대로 시골이었죠. 통치자가 자신의 고향이란 이유로 구미를 전폭적으로 밀어준다면 다른 후보 지역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을 밀어주는 것에 대해 외부에서 말이 나올까봐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고요. (참조 - 낙동강변 가난의 '땅'에 주민 스스로 세운 '기적'…국내 최대 내륙공단 '탄생') 또한 구미가 산업단지 형성에 최적의 지역이기 때문에 공단이 들어서게 되었다는 주장도 맞지 않습니다. 구미공단의 입지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낙동강을 접해 용수가 풍부하고 내륙에 있어 염분으로 인한 기계손상 우려가 없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영준
2021-10-27
대량생산이 진정으로 탄생시킨 것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대량생산은 현대 산업사회를 이끄는 가장 기초적인 생산양식입니다. 대량생산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 먹는 음식, 잠자고 생활하는 주거지 등을 누릴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대량생산이 우리의 일자리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이 대량생산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요? 첫 대량생산, 플랜테이션 대량생산과 그 대량생산을 실현하는 공장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산업혁명과 방적기/방직기의 발명을 들곤 하죠.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대량생산과 공장은 그보다 이미 수 세기 전에 등장한 개념입니다. 바로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말이죠. 오로지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플랜테이션 농업은 16세기 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습니다. 여기엔 설탕이 매우 큰 역할을 했죠. 설탕은 고대부터 매우 인기 있는 감미료고 상품적 가치가 높았고 때문에 설탕을 대량 생산하는 공정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물론 이것은 설탕의 주원료인 사탕수수의 특이성 때문입니다. 사탕수수를 베면 그 단면에서 사탕수수 수액이 흘러나오는데 이게 바로 설탕의 원료가 되는 자당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어낸 사탕수수를 오래 방치하면 수액이 계속 빠져나가므로 신속하게 압착기로 보내 끓이고 불순물을 걸러내고 당밀과 럼을 분리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의 각 작업단위마다 노동자들의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져야 하며 시간이 생명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원시적인 공장과 대량생산이 바로 이 설탕을 만드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라 할 수 있는 거죠. 구대륙의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설탕 수요는 플렌테이션의 규모 확대와 더불어 압착기의 처리 효율 증가를 불러왔습니다.
김영준
2021-10-13
5세대 150여년.. 가족기업의 정점을 찍은 '타바스코 소스 이야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피자를 주문하면 항상 딸려오는 핫소스. 그중에서도 타바스코 소스는 핫소스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어지간한 미국식 음식점을 방문하면 테이블 위에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타바스코 소스죠. 이런 타바스코 소스가 탄생한 게 1868년이니 올해로 무려 153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죠. 현재 전 세계 16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매년 2억5000만달러(약 2900억원)의 매출을 거두고 있으니 그야말로 세계를 정복한 핫소스라고 할 만합니다. 전통의 가족기업 이 타바스코 핫소스를 만드는 기업은 매킬레니(McIlhenny. Co.)로 창업주인 에드먼드 매킬레니가 설립한 이후로 그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전형적인 가족기업입니다. 규모가 커진 기업들이 흔히 하는 주식시장 상장 없이 철저히 가족기업으로 남았고, 지분 또한 에드먼드 매킬레니의 후손들이 전부 보유하고 있는 거죠. 심지어 이 기업은 90년대 중반에 P&G 출신의 빈스 피어스라는 사람을 CEO로 임명했던 것을 제외하면 기업의 경영 또한 가문 사람들에게만 맡겨온 특이한 이력을 자랑합니다. 이 때문에 매킬레니는 매우 이례적인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통하는 글로벌 상품을 보유하고도 비상장 기업에, 지분을 모두 가문이 보유하는 가족기업이며, 단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곤 경영 또한 가족들이 이끌어가는 기업이란 점에서 말이죠.
김영준
2021-09-27
비효율과 시간이 만든 경쟁력, 바나나맛 우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바나나맛 우유만큼 훌륭한 상품이 또 어디 있을까요? 3040 세대의 어린 시절 추억 속 상품이자 베스트셀러, 그리고 빙그레의 효자 상품이죠. 가공유 시장의 절대 지배자로 바나나우유 시장 점유율 80%가 넘습니다. 단일 상품으로 연매출 2000억원 이상을 기록했을뿐더러 현재도 빙그레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품입니다. 이 상품이 1974년에 처음 나와서 올해로 47년째를 기록 중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상품이죠. 그렇다면 이 상품은 어떻게 시장을 지배하는 상품이 될 수 있었을까요? 빙그레의 시작 바나나맛 우유를 만든 빙그레는 베트남에서 미군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던 홍순지 씨로부터 시작됩니다. 미군 납품업자였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나름대로 연줄과 능력을 갖춘 사업가였죠. 이 홍순지씨가 아이스크림 납품을 위해 1967년 9월에 세운 회사가 바로 대일양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가 71년에 대일유업으로 상호를 변경하죠. 82년에 빙그레로 다시금 상호를 변경하면서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회사가 됩니다. 그는 미군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유업 산업을 키우던 정부의 요구에 발맞춰 유가공업에 뛰어들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백화점 거부 J. C. 페니가 설립한 아이스크림 기업, 퍼모스트와 기술제휴를 하고 공장을 세우죠.
김영준
2021-09-13
때로는 2등이 더 좋을 수도 있다 (feat.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경쟁의 세계에서 2등을 목표로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2등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이거나 목표를 향한 과정으로 존재할 뿐이죠. 이런 점은 스포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토너먼트 경기를 통해 1위에서 3위까지 메달을 주는 상황을 가정해 보죠. 1위를 차지하여 금메달을 딴 팀이나 선수는 당연히 매우 큰 기쁨과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메달과 동메달은 어떨까요? 은메달을 딴 선수는 동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만족할까요? 실은 그렇진 않습니다. 순위로 보자면 1위, 2위, 3위 순이지만 그 결과에 대한 만족으로 보자면 1위>3위>2위 순인 거죠. 결승에서 이겨 1위를 차지하고 우승을 한 쪽은 당연히 다른 누구보다 만족할 겁니다. 하지만 토너먼트 제도하에서 2위와 3위의 차이는 언제 패배를 하였느냐의 차이입니다. 3위는 4강에서 패배하고 3-4위전에서 승리를 거둔 쪽이죠. 결승에 가진 못했지만 마지막 경기는 이겼으므로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음을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위는 마지막 경기에서 진 쪽이죠. 우승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좌절당한 것이기에 그 충격은 4강에서 진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즉, 2위란 원하는 것(우승, 1위)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란 거죠. (참조 - 정말 동메달이 은메달보다 행복할까요? 인공지능으로 알아봤습니다)
김영준
2021-08-30
소비자들은 왜 맘스터치의 가격인상에 유독 분노하는가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함에 있어 가격 책정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죠.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야 하기 나름이고 할 수 있는 한 잘하는 것이 당연한 데 비해,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고 소비자의 잠재수요와 시장에서의 위치가 결정되고 수익성이 판가름 나니까요. 이러한 가격 결정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가격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듯 '괜찮은 품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것'이라고 말이죠. 물론 이 명제가 틀린 명제는 아닙니다. 괜찮은 품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면 소비자들은 매우 좋아하고 판매자도 그 덕분에 큰 인기를 얻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과연 그 가격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가'를 말이죠. 맘스터치에 분노하는 이유 대표적으로 치킨/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맘스터치를 들 수가 있습니다.
김영준
2021-08-18
'규제가 낳은 혁신' 세계 최초의 지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규제로 인해 말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새 영역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성장한 유니콘일수록 규제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에 그 적정함에 대한 말들이 많죠. 대체로 규제는 나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규제가 혁신을 방해하고 구태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 말이 완전히 틀린 서술은 아닙니다. 하지만 옳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론 규제의 존재가 혁신을 낳기도 하기 때문이죠. 최초의 지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발명이라면 아마 여러 사례를 들 수 있겠지만 저는 송나라 때 등장한 지폐를 꼽습니다. 북송 시대에 등장한 지폐인 '교자'는 귀금속 화폐에 비해 매우 혁신적이었고 서양의 경우 600년 후에나 사용이 시작될 만큼 시대를 앞선 것이었습니다. (참조 - 중국 송나라가 낳은 인류 최초의 화폐 경제) 보통 이 정도 시대를 앞서면 그저 '최초'이기만 할 뿐, 그 시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교자는 당시에도 활발하게 활용됐을 뿐 아니라 이후 북송과 남송이 모두 멸망한 이후 원나라에서도 사용되어 마르코 폴로의 기록에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엄청난 혁신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김영준
2021-08-03
불경기 때문에 편의점 도시락이 인기라는 편의적 설명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만개가 넘는 편의점이 존재합니다. 이 중에서 업계 빅3인 CU, GS25, 세븐일레븐이 전체의 약 80%에 해당하는 4만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죠. 1989년에 세븐일레븐이 방이동 올림픽아파트촌에 처음 점포를 연 이후 31년 만에 일궈낸 엄청난 성적표입니다. 스타트업 같은 편의점의 성장 실제로 편의점의 양적 성장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요즘 시대의 스타트업이 부럽지 않을 정도입니다. 1991년에 300개를 돌파했던 편의점 점포 수는 93년에 1천개 돌파, 8년 후인 2001년엔 3천개, 다시 6년 후엔 1만개, 9년 후인 16년엔 3만개를 돌파하여 현재 5만개에 이르고 있죠. 실제 내용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80년대 후반 기준, 소매유통의 97%가 5인 미만의 종업원으로 운영되었고 81%가 매장 면적 10평 이하였습니다. (참조 - 1988. 8. 1., 매일경제, "유통산업 실상과 허상 <상> 영세성•저생산성") 속칭 '구멍가게'라고 부르던 아주 영세한 곳들이죠. 이런 곳에서 이뤄지는 소매유통은 경영이란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지도 못했고요. 더군다나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가격표가 당시 소매점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김영준
2021-07-20
계속 거칠었기 때문에 추락한 남양유업 이야기 (1989-2021)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지난 글에서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남양유업이 어떻게 선발주자인 서울우유를 추월하고 매일유업과 경쟁했는지를 설명드렸습니다. (참조 - 거칠었기 때문에 클 수 있었던 남양유업 이야기 1964-1988) 이번 글에서는 남양유업이 어떻게 정점을 맞았고 또 하락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그 시작은 유업계 공동의 적, 파스퇴르 유업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1986년에 최명재 대표가 설립한 파스퇴르유업은 저온살균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저온살균한 고급 우유를 먹어야 한다'는 광고로 소비자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한 업체였습니다. 그런데 광고를 저런 내용으로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기존의 유업계에서 장기보존을 위해 활용하는 고온살균법이 고온으로 우유를 태우기 때문에 구수한 맛은 있지만 영양소가 대거 파괴되고 '저운살균을 한 파스퇴르 우유가 진짜 우유'라는 광고를 했기 때문에 논란이 된 거죠. (참조 - 1987. 11. 1. 조선일보, "진짜우유 논쟁 일어") 이 광고 덕분에 파스퇴르우유는 일반 우유에 비해 2배 가격을 매길 수 있었지만 기존 업계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공정위에서 허위과장광고로 판정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사과광고를 게재하라는 징계를 내렸지만 파스퇴르유업 측은 여기에 불복하고 이의신청을 냅니다. 그리고 이 이의신청마저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요. 물론 이마저도 패소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퇴르유업은 허위과장비방광고의 강도를 더욱 강화해 나갔죠. 1989년에 파스퇴르유업은 이미 유업계 최대의 적으로 떠오른 상태였습니다. 새로운 적, 파스퇴르 소비자보호원이 '저온살균 우유와 고온살균 우유 간의 영양 차이가 없다'라는 내용을 발표하자 파스퇴르유업은 소비자보호원을 비방하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실었죠.
김영준
2021-07-06
거칠었기 때문에 클 수 있었던 남양유업 이야기 (1964-1988)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전 대표를 비롯한 오너 일가가 보유 지분을 한앤컴퍼니에 3100억원에 넘기면서 남양유업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분명 이 기업은 2013년의 대리점 갑질 논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가공 업계의 대표 기업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죠. 사실 객관적으로 남양유업의 상품 품질은 괜찮은 편입니다. 소비자들이 남양유업 불매운동을 벌인 이후로 개별 상품에 남양이란 이름을 지웠던 것은 바로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소비자들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소비한 상품들이 남양유업의 제품인 것을 알고 뒤늦게 불매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럼 한앤컴퍼니는 과연 브랜드 가치가 망가진 남양유업을 정상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남양유업이 어떻게 성장을 해오고 경쟁을 해왔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후발주자 1954년, 평안북도 출신의 고 홍두영 명예회장이 동생과 함께 남양상사라는 회사를 차려 비료 수입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비료사업은 산업이 농업뿐이던 상황에서 제법 유망한 사업이었죠. 이걸로 형제가 돈을 꽤 벌었습니다만 62년 화폐개혁으로 인해 계좌동결 조치가 취해지는데 이때 남양상사는 부도를 맞게 됩니다. 그런데 쫄딱 망한 건 아니었습니다. 63년은 정부의 낙농진흥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던 시기고 홍 명예회장은 이때 덴마크와 미국, 일본을 시찰하면서 분유란 아이템을 발굴했거든요. 당시는 매우 제한된 목적으로만 여권이 발급되었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사업을 접긴 했어도 해외를 사업차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자본과 인맥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64년에 남양유업을 설립하는데 당시 농림부의 외화배정추천에서 갓 설립된 남양유업이 시설투자 명목으로 15만달러를 배정받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김영준
2021-06-25
우지파동 때문? 80년대 '라면전쟁'에서 농심이 삼양을 이긴 진짜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라면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꾸준히 인기 있는 상품은 없습니다. 하지만 라면이라는 상품을 두고 국내 기업들이 벌인 치열한 경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80년대에 벌어진 삼양과 농심의 라면 전쟁일 것입니다. 라면시장을 개척한 삼양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흉작 등으로 인해 만성적인 식량 부족사태를 겪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운동이 추진되었지만 사람들의 거부감이 컸죠. 이때 삼양식품의 전중윤 회장은 라면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자주 다니며 인스턴트 라면을 먹어본 경험이 있었던 터에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이 라면 사업에 힘을 더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를 설득해 차관을 받은 후, 당시 일본 인스턴트라면 업계 2위였던 묘조식품으로부터 라면 제조기계를 들여오고 기술 무상이전을 받아 1963년 9월에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 탄생했으니 그게 바로 삼양라면이었습니다. 당시 돈으로 한 봉지 10원의 가격이었죠. 그런데 상품을 만들긴 했지만 라면이 뭔지도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팔리긴 어려웠습니다. 이 때문에 삼양식품 직원들이 당시 번화가와 회사, 공장 등지를 찾아다니며 무료시식회를 열어 소비자들에 게 라면이 어떤 상품인지를 알리는 행사를 정말 많이 진행했었죠. 라면을 시식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붐을 이룰 정도였습니다. 그 덕분에 삼양은 매년 세 자릿수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큰 성공을 맛보게 되었고요
김영준
2021-06-07
1등이 되는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각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햄버거에서의 맥도날드, 커피에서의 스타벅스, 스포츠 어패럴에서의 나이키 등등. 글로벌 브랜드가 아닌 국내 시장으로 한정해 보아도 해당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들이 수없이 많죠. 라면에서의 농심, 만두에서의 비비고 등이 그러하죠. 이런 1등 브랜드들을 보면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1위가 된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브랜드들이 1등이 된 이유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곤 합니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설명이고 실제로 사실이긴 합니다만 충분한 설명은 아닙니다. 최고의 상품이 시장에서 1위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87년에 탄생한 고향만두는 2013년에 비비고 만두가 등장할 때까지 26년간 1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과연 그 26년 동안 고향만두에 비견할 만한 상품이 단 하나라도 없었을까요? 고향만두만큼 훌륭한 상품이 있다면 고향만두와 비슷한 점유율을 차지했어야죠. 또 익숙함은 어떨까요? 행동경제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익숙할수록 그 익숙한 대상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치죠. 바로 실제 상품의 질적 수준과는 관계없이 익숙하기만 하면 다른 것보다 더 높은 호감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소비는 대부분 관성적입니다.
김영준
2021-05-24
'후발주자' 파리바게뜨는 어떻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나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SPC는 베이커리 부문에서 현재 손꼽히는 식품그룹입니다. 호빵, 크림빵 등 양산빵으로 유명한 SPC삼립, 파리바게뜨와 파리크라상을 브랜드로 거느린 파리크라상, 던킨도너츠와 배스킨라빈스를 보유한 비알코리아를 모두 가지고 있는 곳이죠. 이 중에서도 파리바게뜨가 SPC의 핵심입니다. 매출을 기준으로 봐도 전체 그룹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죠. 단순히 규모 정도가 아니라 파리바게뜨가 현재의 SPC를 만들었습니다. 후발주자 샤니 현 SPC그룹의 회장 허영인 회장이 아버지인 허창성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을 당시 샤니는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형인 허영선 전 회장이 물려받은 삼립의 1/10 사이즈에 불과했고 대표 브랜드나 상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허영인 회장은 빵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유학으로 빵을 배워온 유학파였고 시장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죠. 1980년대는 이전까지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던, 공장에서 생산하는 양산빵에서 베이커리 빵으로 중심이 옮겨가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의 소득이 늘면서 좀 더 신선한 고급 빵을 찾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허영인 회장은 베이커리 사업 진출을 추진했습니다.
김영준
2021-04-26
대중은 평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최근 네이버가 스마트플레이스에서 평점 시스템을 폐지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대신 사용자들의 리뷰에서 AI가 키워드를 잡아내 그 키워드를 검색자에게 노출시키는 서비스를 내놓았죠. 이를 '태그구름'이라고 합니다. (참조 - 네이버, '별점 리뷰' 없애고 '태그 구름' 선보인다) 이렇게 네이버가 서비스를 변경한 이유는 소수의 악의적 평가가 오프라인 상점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역시 별점이란 평가 시스템 때문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과거에는 소수의 전문가나 특정 매체가 평가를 독점하고 거기서 나오는 권위를 통해 해당 산업이 활성화되는 방식으로 움직였죠. (참조 - 평가가 비즈니스가 될 때 : US뉴스 대학순위, 미쉐린 스타) 2000년대부터 열린 인터넷 시대는 평가라는 권력을 이용자에게 분산시켰습니다. 따지고 보면 권력의 분산이란 거창한 개념 때문이 아니라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자의 참여를 활용한 것이었죠. 그 의도야 어쨌건 이용자가 직접 매기는 평점은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최고의 킬러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평가 서비스들이 직접 평가의 주체가 되어 위상을 쌓아올렸다면 온라인 시대 플랫폼들은 평가를 하는 이용자들의 집중을 통해 위상을 쌓아간 거죠. 거의 모든 플랫폼들이 자신들이 취급하는 서비스에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별점을 매기도록 만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매우 완벽합니다.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하거나 이용하는 서비스에 평점을 매기고 다른 소비자들도 이를 구매나 이용의 판단 근거로 활용하는 거니까요. 특히 같은 소비자 입장이라 체감의 수준은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게 실제로는 허점이 매우 많다는 것이죠.
김영준
2021-03-30
평가가 비즈니스가 될 때 : US뉴스 대학순위, 미쉐린 스타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평가는 많은 사람들을 떨게 만듭니다.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사회에서건 평가를 받는 게 그리 유쾌한 사람은 없죠. 그중에서도 정성적인 평가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정량평가는 계량되는 수치로 따지는 것인 만큼 데미지가 적습니다. 매출이 경쟁자보다 적으면 받아들일 수 있고 시험점수가 남들보다 낮은 것 또한 그렇죠. 하지만 정성평가는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기에 늘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하기 때문에 평가모델은 권위와 권력을 가지게 되죠. US뉴스 대학순위 대표적인 곳이 바로 US뉴스&월드리포트(이하 US뉴스)입니다. 국내에도 이 US뉴스에서 발표하는 대학 순위가 가끔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며 미국 대학에 대한 평가 지표로 많이 활용되고 있죠. 그리고 이를 로컬화하여 중앙일보 측에서도 대학 순위를 매년 발표하기도 하고요. 지금이야 이곳에서 발행하는 대학 순위가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받고 많은 대학들이 이 리스트의 상위에 들기 위해 애를 씁니다만, 이곳이 미국 유수의 대학들을 평가할 만한 권위를 처음부터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US뉴스는 1970년대에 발매부수 약 200만부 정도의 중급 시사주간지였습니다. 대학 순위는 1983년에 판매부수를 늘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김영준
2021-03-04
BBQ는 어떻게 순식간에 치킨 프랜차이즈 왕좌에 오를 수 있었나?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BBQ는 2010년대 초반까지 치킨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였습니다. BBQ가 2000년 이후 가격 인상과 마케팅의 트렌드를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그 위상을 짐작할 수가 있죠. 그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2만원 치킨 논란으로 미움을 받기도 했었고요. 이렇듯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왕좌를 지켜온 기업이지만 이 위상이 90년대 후반의 단 4년 만에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치킨 프렌차이즈' 비전 BBQ의 윤홍근 회장은 원래 미원(현 대상그룹)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습니다. 1994년에 미원은 부도가 난 닭고기 업체 마니커를 인수하는데요. 이때 윤홍근 회장은 미원마니커에 영업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망가진 영업망 회복이란 목표를 부여받습니다. 당시 마니커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사육부터 육가공, 유통까지 수직계열화를 위해 설비투자를 진행하다 자금이 말라버려 93년 10월에 부도가 난 이후 마니커의 대리점들이 이탈하고 유통망이 무너졌기 때문이죠. 부도 이전에 하루 유통량 5만 마리였던 것이 윤홍근 회장 발령 당시엔 1만 마리로 추락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윤홍근 회장이 6개월 만에 원래 목표치를 회복하고 확장해나가기 시작했지만 12만 마리를 고비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김영준
2021-02-05
'좋은 선택'을 위한 데이터와 직관의 활용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늘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보고 난 후에는 거의 대부분 후회를 하곤 합니다. ‘이때 이거 말고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라고 말이죠. 우리는 늘 선택을 하곤 하지만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알 수 없어 많은 고민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일까요? 좋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선택이기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죠. 하지만 좋은 선택과 좋은 결과는 서로 관계가 희박합니다. 선택은 나 자신이 하는 것이지만 결과는 나 자신의 선택뿐만 아니라 그 당시 환경과 제한된 정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선택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진주만의 교훈 대표적인 예로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군이 일본군의 제로센을 미군 B-17 폭격기로 판단한 선택을 들 수 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당시 당직사관이었던 커밋 타일러 중위는 레이더병으로부터 ‘미확인 비행물체가 기지로 접근 중’이라는 전화보고를 받습니다. 타일러 중위는 이를 아군의 B-17이 본토에서 귀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레이더병에게 ‘Don’t worry about it’이라 말합니다.
김영준
2021-01-04
꿀과 설탕의 역사로 보는 '희소성의 원칙'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희귀한 것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귀한 것은 가격이 비쌉니다. 당연한 얘기를 왜 하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사실 이게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희귀한 상품은 왜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까요? 그리고 왜 비싸게 거래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대게 소비를 할 때 희귀한 상품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깁니다. 좀 더 정확히는 그 상품이 가진 내재가치가 높으며 그러한 내재가치가 높은 상품을 공급하는 것은 어렵기에 희귀하고 또 비싸게 여긴다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오래전부터 써온 가장 오래된 식품 감미료 중 하나인 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꿀은 그 강렬한 단맛과 특유의 꽃향기 덕분에 인류 역사 초기부터 인기가 많았지만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상품은 아니었습니다. 채집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웠던 탓입니다. 그렇기에 당시의 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내재가치가 높으면서도 공급 자체가 어렵기에 귀한 상품이란 정의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변화가 생깁니다. 바로 설탕이 등장한 것입니다. 설탕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서였습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인도를 정벌하는 와중에 그의 병사들이 ‘꿀이 나오는 갈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인도인들은 바로 그 꿀이 나오는 갈대인 사탕수수 나무를 적당한 화력으로 끓이면 암갈색의 결정이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설탕인, 지금은 한국어로 흑당이라 부르는 케인 슈거(Cane sugar)입니다.
김영준
2020-12-09
전략이 필요한 순간 생각해야 할 '더닝-크루거 효과'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저는 기업들의 초기 성장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업들이 갓 세워진 초창기 때 어떠한 방식으로 성장을 이뤘는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펴봅니다. 매년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 등장하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등장한 수많은 신생기업들 중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장하는 곳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죠. 성장하는 신생기업들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경쟁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본, 인적 네트워크, 좋은 상품을 만들 기술, 창업자의 명성 등이 바로 그것이죠. 초기에는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완전경쟁시장에 가깝기에 경쟁자들이 다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무릅니다.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경쟁자원의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특히 신생기업일 때는 창업자의 1인기업에 가까운 경우가 많으므로 사실상 창업자의 역량 차이가 성장의 차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키의 탄생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필 나이트가 사업구상을 생각하던 시점엔 20대 초반의 가진 것도 없는 애송이였지만 미국 국가대표 코치이기도 했던 빌 바우어만을 공동창업자로 끌어들이면서 바우어만의 명성을 통해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계약을 이끌어냈고 창업을 하였습니다.
김영준
2020-11-11
코로나 이후에도 재택근무는 계속될 수 있을까?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재택근무가 다음 시대의 새로운 근로 방식으로 각광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재택근무를 선망하던 사람들은 재택근무의 많은 장점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일을 하기에 그만큼 자율성이 강조되고 근로자도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실제로 재택근무를 하면 출퇴근길의 러시아워를 겪지 않아도 되니 아까운 시간을 도로에서 날리는 것 같은 유무형의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 임대료가 비싼 주요 업무지구에서 넓은 사무실을 빌릴 필요가 없으니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죠. 프랑스의 경우 재택근무는 잦은 파업으로 인한 교통대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으로도 활용되었으니 그 효용성을 충분히 검증받았다고 할 수 있죠. 이제까지 선진국 기업의 근무방식이자 미래의 근무방식으로 선망받던 재택근무는 국내에서도 현실이 되었습니다. 올해 2월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COVID-19 때문이었죠. 이전까지 소수의 IT기업 등이 시범적으로 운영하던 것이 COVID-19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재택근무를 실행할 업무역량을 갖춘 기업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재택근무를 위한 여러 기술과 프로그램도 적극 도입되면서 사무직의 경우 충분히 재택으로 전환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고요. 높은 만족도 현재까지 재택근무에 대한 기업과 직장인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입니다.
김영준
2020-10-14
'승자의 저주'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대학 교과서에서 보지 않았다면 아마 기업 인수에 대한 기사에서 보셨을 겁니다. 승자의 저주는 애틀랜틱리치필드에서 근무하던 기술자 3명이 197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개념 자체는 매우 간단합니다. 석유 회사들이 석유 채굴권을 놓고 경매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석유 채굴로 얻게 될 실제 가치는 경매에 참여하는 석유 회사들에 모두 동일한 상황이고요. 그러면 석유회사들은 각자의 분석을 통해 매장된 석유의 가치를 파악하려고 애쓸 겁니다. 그리고 분석한 가치에 따라 서로 다른 금액을 써서 낼 거구요. 이 경우 가장 큰 금액을 써서 경매에 낙찰된 석유회사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 저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실제 가치보다 큰 금액을 써내서 입는 경제적 피해, 2) 금액을 과하게 쓰진 않았지만 실제 가치가 기대치에 못 미쳐서 입는 심리적 피해가 바로 그것이죠.
김영준
2020-09-17
실패의 지름길 : 과잉 최적화에 대한 강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성공한 기업, 그리고 업계의 스타 경영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늘 높습니다. 그런 기업과 경영자의 사례를 살펴보고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워 자신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성공한 각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가지고 있었던 장단점, 보유하고 있던 역량 등은 모두 다릅니다. 그렇기에 상황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또한 모두 다릅니다.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결정과 방식을 따라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성공을 분석할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정과 방식 자체에 주목하기보단 그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과 환경, 당시의 역량과 장단점 등을 모두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선택과 해결의 방식은 내부의 상황과 외부의 상황에 따라 제한된다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가진 자원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죠. 돈, 인력, 시간, 역량 등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들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이 한정된 자원이란 제약 조건하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거두고 낭비를 막고자 어떤 것을 선택하며 어떤 것은 포기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독립변수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제한된 자원의 종속변수인 것이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략적 선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영준
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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