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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한영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법학에세이',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게임의 법칙' 등의 책을 썼고 네이버프리미엄에서 '우리가 사랑한 책들'이라는 연재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상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이미지와 스토리 제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논문을 준비하던 다른 친구들과 자주 하던 잡담 주제 중에 '어떤 성이 가장 박사다운가?'라는 엉뚱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논문이 통과되어 학위를 받으면 각자의 성을 붙여서 '김 박사, 이 박사'로 불릴 텐데 경우에 따라 이게 멋지게 혹은 어색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연배가 오래된 사람들이라면 '김 박사'라고 하는 순간 태권브이를 떠올릴 것이고 '이 박사'는 나름 무난했는데 '이박사 디스코'가 나오면서 약간 재밌는 느낌으로 바뀐 듯하고 '안 박사'는 언제까지나 박사가 아닌 느낌이고 '박 박사'는 학위 후에 바닥을 박박 기면서 고생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저의 경우는 '곽 박사'인데 발음이 너무 세서 아무래도 별로인 쪽으로 분류되었고 만장일치로 가장 멋진 케이스는 '설 박사'로 모아졌습니다. 발음도 좋고 뭔가 깊이감도 느껴지구요. 우연인지 몰라도 실제 제 주변에 있던 설 박사는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교수에 임용되기도 했습니다. 다 웃자고 하는 농담입니다만 이런 '이미지'가 사람을 판단하는데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같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이어령 교수님' 같은 경우는 이름만 들어도 지적인 향기가 막 나지 않나요?
곽한영
2일 전
“야, 너. 군대 가고 싶냐, 안 가고 싶냐?”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군대 가고 싶냐, 안 가고 싶냐?" LG와 삼성은 지금도 우리나라, 아니 세계의 가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전통의 라이벌입니다. 제 기억에 이 두 회사가 가장 본격적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영역은 70년대 텔레비전 시장에서부터였습니다. 아직 럭키 주식회사와 금성사가 통합해서 'LG'가 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이코노텔레비전'에 '금성전자'가 맞서 싸우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금성전자에서 대대적인 광고캠페인을 벌이면서 내놓은 유명한 카피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였습니다. 당시엔 가전제품이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큰맘 먹고 사야 할 만큼 값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되도록 고장 없이 오래 쓰는 게 중요했는데 '전파사'에 가서 삼성TV를 살까 금성TV를 살까 고민할 때 '디자인이나 잡다한 기능에 혹해서 충동적으로 삼성을 선택하면 후회할 거다, 우리 금성 제품을 선택해야 오래오래 잘 쓸 수 있다' 이런 의미를 담은 카피였습니다. 사실 당시 삼성 이코노TV에 비해 디자인이 밀린다는 평가를 받던 금성전자에서 '그래도 우리 물건이 튼튼하긴 해요'라며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주장에 가까웠지만 저 카피만큼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아주 짧은 순간, 별 생각 없이 했던 선택으로 인생의 행로가, 성공과 실패가 크게 엇갈리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네요. 당시 저는 우리나라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병역의 의무를 지기 위해 징병검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잔병치레가 많긴 했지만 운동을 좋아해서 청소년기에는 거의 병원구경을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차피 1급 현역판정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얀 팬티 한 장만 입은 수십 명의 청년들이 커다란 건물 안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이 민망한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요즘은 교통비로 몇천원이라도 준다던데 점심은 뭘 사 먹을까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멍하니 나무 벤치에 앉아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검사를 했던 군의관이 저를 손짓해서 불렀습니다. 이미 지나간 순서로 되돌아가는 일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곽한영
22일 전
기쁨도 독이 된다.. 프로들이 루틴을 지키는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스포츠 경기에 '흐름'이 있을까? 스포츠 경기 중계를 보다 보 면 해설자가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 중계에서 나오는 이런 표현들 말입니다. '이제 흐름이 롯데에게 완전히 넘어왔어요' '아, 이렇게 되면 LG쪽으로 흐름이 넘어가죠' 'KT선수들이 한번 흐름을 타면 걷잡을 수 없죠' 그런데 매번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지곤 했습니다.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긴 하지만 정말로 야구 경기에 물이나 바람처럼 '흐름'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바둑이나 장기처럼 앞에 둔 수가 누적되어서 계속해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이라면 '흐름'이라는 말이 성립되겠지만 야구는 한 타석, 한 타석이 따로따로 이루어지는, 통계 용어로 말하자면 앞의 행위가 뒤의 행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는 '독립시행'이 기본인 스포츠잖아요. 마치 이번에 주사위를 굴렸는데 1이라는 낮은 숫자가 나왔다고 해도 다음 번 주사위를 굴리기의 결과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앞 타석 선수가 삼진을 당했다고 다음 타석 선수가 홈런을 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앞 이닝에서 호수비를 했다고 해서 다음 이닝 공격에서 더 유리해질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흐름이란 경기에 스토리를 부여해서 시청자들이 재밌게 보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스토리텔링'이거나 그저 어느 팀이 현재 분위기가 좋다 혹은 나쁘다 정도의 '기세'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한 경기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남자 단식 1라운드 경기였던 라파엘 나달 선수와 아르헨티나의 세룬돌로 선수의 경기였는데
곽한영
2022-08-08
가진 걸 단번에 포기하는 결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가리발디 이야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이상한 벽화 이 그림은 이탈리아 시에나의 시민박물관에 있는 프레스코 벽화입니다. 피에트로 알디라는 화가의 작품으로 제목은 '테아노에서 가리발디와 만나고 있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1886)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이었던 에마누엘레 2세가 이탈리아 남부를 평정한 가리발디로부터 남부 지역의 지배권을 넘겨받아 통일 이탈리아가 처음으로 탄생한 1860년 10월 26일의 역사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설명을 곱씹어보면 뭔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의문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이탈리아를 남과 북으로 나눠서 차지한 상태라면 당연히 이제 '왕중왕 결정전'이 벌어져야 할 순서가 아닌가요? 가리발디는 왜 본 게임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항복한 것일까요? 아니, 저게 지금 항복하는 장면이 맞긴 한가? 두 사람 다 말에 타고 있을 뿐 아니라 친근하게 악수를 하고 있잖아요? 그림을 자세히 보면 더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악수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중 누가 국왕이고 누가 가리발디일까요? 당연히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는 흑마 위에 위엄넘치는 망토를 두른 왼쪽 사람이 국왕이고 군복을 입고 말도 사람도 긴장해서 자세가 흐트러져 있는 오른쪽이 가리발디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가리발디는 빅토리아 시대에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머리카락에 담배냄새가 배지 않도록 썼던 납작한 원통 모양의 '스모킹 캡'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쓰고 다녔으니 왼쪽이 가리발디이고
곽한영
2022-07-13
조 윌프리드 송가, 최고가 될 수 없었던 최고의 선수 이야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엎드려 우는 사나이 최근 코로나가 막바지에 들어가면서 야외활동 특히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인기 종목인 프로야구나 축구의 인기도 여전하지만 요즘 갑작스럽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종목으로 테니스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는 스포츠보다는 하는 스포츠로서 접근성도 좋은 편이고 테니스 패션이라고 불리는 셔츠, 스커트, 모자 등의 산뜻한 기능성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아져서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테니스 역시 보는 스포츠로서, 특히 프로의 영역에서 오랜 시간 인기를 유지해온 종목입니다. 워낙 저변이 넓고 선수들도 많다 보니 전 세계에서 열리는 대회의 숫자도 어마어마한데 현재는 마치 피라미드처럼 대회의 수준과 형식이 체계화되어 열리고 있습니다. 대회에 입상하면 얻게 되는 랭킹포인트와 상금을 차등화해서 이걸 바탕으로 세계 랭킹이 정해지기 때문에 상급의 대회에 나가려면 꾸준히 여러 대회에 참여해서 포인트를 쌓아야 합니다. 가장 아래에 ITF 월드테니스 투어, 그 위에 ATP 챌린저 투어, 250투어, 500투어, 마스터스 1000 투어까지 층층시하인데 그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가장 영예로운 4개의 대회를 '그랜드 슬램'이라고 부릅니다. 네 개의 대회는 열리는 시기를 순서대로 말씀드리면 호주 멜버른에서 1월에 열리는 호주 오픈, 프랑스 파리에서 5월에 열리는 롤랑가로스 오픈, 영국 런던에서 6월 말에 열리는 윔블던 대회, 8월 말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US 오픈입니다. 이 네 개의 대회는 열리는 시기나 대륙, 기후가 모두 다르기도 하지만 코트 자체의 성격도 달라서 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호주 오픈과 US오픈은 모두 파란색 하드코트이지만 롤랑가로스는 '클레이코트'라고 불리는 흙으로 된 바닥이고 윔블던은 잔디코트입니다. 코트의 재질에 따라 공이 튀는 각도나 속도, 선수들의 스텝 등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중 롤랑가로스의 흙바닥은 붉은 벽돌을 가루로 만들어 만드는 '앙투카' 재질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코트가 붉은색을 띠게 됩니다. 앙투카는 롤랑가로스의 상징과 같아서 대회가 열리는 현지에서는 앙투카를 유리병에 담아 기념품으로 팔기도 합니다. 올해 롤랑가로스 대회 3일 차였던 지난 5월 24일 한 남자 선수가 이 앙투카 코트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곽한영
2022-06-15
"나 아직 안 죽었어!".. 필 콜린스의 버티는 삶에 대하여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모든 걸 다 가진 기성세대 한때 영국을 대표하는 유명 그룹이었던 '오아시스'의 두 형제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는 입이 험하기로 유명했는데 특히 별다른 친분이나 개인적인 인연도 없던 필 콜린스를 툭하면 욕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들의 음악 여정을 그린 영화 '수퍼 소닉'을 보면 서로를 욕할 때 '이런 필 콜린스 같은 자식아!'는 기본이고 '필 콜린스의 머리를 잘라다가 냉장고에 넣어야 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끔찍한 말을 낄낄거리며 내뱉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필 콜린스를 싫어했던 것일까요? 무명의 그룹으로 바닥을 전전하던 시절의 오아시스에 필 콜린스는 같은 영국 출신의,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심지어 락도 아니고 상업음악인 팝음악을 하는 '기성세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951년생인 필 콜린스는 '제네시스'라는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그룹의 드러머로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해 슬럼프에 빠진 제네시스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Invisible Touch'라는 신스팝을 연주하는 그룹으로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는데 예술 음악을 하던 시절 제네시스의 골수팬들에게 이런 '변화'는 '변질'이자 '배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필 콜린스는 드럼 연주도 수준급이었지만 노래도 잘 부르고 작사, 작곡, 편곡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였습니다.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아예 제네시스를 벗어나 솔로로 독립하면서 그는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는 훨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그는 대스타가 되고 난 후에는 최고의 세션맨들, 특히 웬만한 가수들은 비용이 엄두가 안 나서 앨범 녹음할 때도 부르기를 주저하는 풀브라스밴드를 본인의 백밴드로 대동하고 다니면서
곽한영
2022-05-19
나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로버트 카파'는 누구인가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전설의 종군기자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날며 생과사를 넘나드는 용병들의 이야기를 그린 걸작 만화 '에어리어 88'에는 거칠기 짝이 없는 용병들의 사이를 니콘 카메라 하나만 멘 채로 누비는 종군기자가 한 명 나옵니다. 글 쓰는 이들이 흔히 갖게 되는 유약한 이미지 대신 그는 용병들 못지않은 전사처럼 느껴지고 그에게 카메라는 용병들에게 주어진 전투기와 기관총에 손색없는 완벽한 무기이자 분신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런 '목숨을 걸고 전장을 달리는 종군기자'의 이미지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로버트 카파'일 것입니다. 그는 공수부대와 함께 낙하하고, 상륙부대와 함께 노르망디에 상륙했습니다. 스페인 내전과 이스라엘 독립전쟁 등 가장 위험한 전쟁의 현장 어디에나 있었으며 끝내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 중 지뢰를 밟고 폭사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이런 열정적인 사진작가 정신은 어느 카메라 회사의 광고카피로도 쓰인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보도사진계의 명언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가 아니라 '너무' 가까이, 그것도 '너무 자주' 현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모하다 할 만큼, 마치 스스로 현장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로버트 카파'의 탄생 그는 가난한 유태계 헝가리인이었습니다. 본명은 앙드레 프리드먼. 안 그래도 유럽에서 국외자 취급을 받던 유태계인 데다 여러 강대국에 이리저리 치이는 소국인 헝가리 출신이니 기를 펴기가 쉽지 않았겠죠. 그나마도 반정부시위 전력으로 헝가리에서마저 추방을 당해서 그는 독일에서 사진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곽한영
2022-04-18
천재 사이에 끼었을 때의 자세.. 인생은 링고 스타처럼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성공과 실패' 이야기, 이번이 세 번째네요. 앞선 '피로스의 승리 이야기'나 '세 명의 탐험가 이야기'가 모두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들이어서 이번엔 '진짜 성공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준비해봤습니다. (참조 - '피로스의 승리' 성공 같은 실패는 왜 일어나는가) (참조 - 누가 성공한 사람일까.. 세 명의 탐험가 이야기) 오늘의 주인공은 20세기 최고의 그룹으로 손꼽히는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 스타'의 이야기입니다. 천재 사이에 끼었을 때의 자세 워낙 유명한 그룹이긴 하지만 혹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사진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이 사진의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폴 매카트니, 존 레넌,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의 순서입니다. 아마 비틀즈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은 많이 아시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비틀즈의 활동과 성공과정에서 이 두 사람의 비중이 단연 압도적이긴 했습니다. 비틀즈 노래의 대부분을 작사, 작곡했는데 워낙 천재들이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든 곡들이 많다 보니 (예를 들어 'Hey Jude'의 경우 앞부분은 폴이, 뒷부분 '나나나'는 존이 만들어서 붙여서 완성된 곡입니다) 아예 각 곡의 작사작곡 크레딧을 표기할 때 두 사람의 공동작사/작곡으로 표기하는 것이 비틀즈의 관행이 되어버렸을 정도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연주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는 폴 매카트니는 기타도 아무에게 배우지 않고 혼자 익히다 보니 특이하게도 오른손으로 코드를 잡는 왼손잡이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스스로 개발한 독특한 기타주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곽한영
2022-03-23
누가 성공한 사람일까.. 세 명의 탐험가 이야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성공과 실패 이야기, 지난번에는 수없이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인생을 마무리한 '피로스의 승리' 이야기를 들려드렸죠? (참조 - '피로스의 승리' 성공 같은 실패는 왜 일어나는가)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삶의 양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무엇을 성공이라고 혹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1. 로버트 스콧 : 장엄한 최후, 하지만... 19세기 말은 유럽에서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바다를 제패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최고의 패권을 누리고 있었고 영국의 영원한 라이벌 프랑스 역시 전 세계로 진출해 식민지를 넓히고 있었으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역시 제국의 대열에 합류한 독일은 유럽의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었죠. (1) 남극의 의미 이제 지구상의 웬만한 곳에는 거의 다 제국의 손길이 뻗친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곳은 혹독한 추위로 버려진 땅으로 여겨지던 극지 지역, 즉 남극과 북극이었습니다. 이 중 북극은 북극해의 얼음바다를 뚫고 지나가는 '북극 항로'를 발견할 수 있다면 북미 대륙의 동쪽과 서쪽을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 미국 등 북미 국가들이 탐험에 더 적극적이었고 결국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것도 미국인 탐험가 '피어리'(Robert Edwin Peary)였습니다. 이제 남극은 유일하게 남은 미개척지, 인류의 마지막 도전 대상으로 더 큰 관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곽한영
2022-02-21
'피로스의 승리' 성공 같은 실패는 왜 일어나는가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곽한영님의 기고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부산대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는 곽한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다섯 번에 걸쳐 앞으로 아웃스탠딩을 통해 '성공과 실패'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세상 어딘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혹은 성공하고 혹은 실패하는 모습들이 폭죽처럼 반짝이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그 반짝임이 진실의 전부일까요? 어떤 경우엔 성공 같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일도 있고, 반대로 실패한 일이라도 성공에 못지않은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 속에 숨어있는 그런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와 그 이면의 속사정들을 옛이야기하듯 들려드리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전쟁의 천재 오늘 첫 번째로 들려 드릴 이야기는 '피로스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을 꼽는다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현재 의문의 여지 없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도 있고, 역사상 가장 많은 땅을 정복했다는 징기스칸의 몽골 제국이나 중국을 통일한 진 제국도 있었죠. 하지만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광대한 땅을, 확실한 권력을 바탕으로 지배한 대표적인 제국은 역시 로마 제국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고대 서구 사회의 거의 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중해 일대를 모두 차지하고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오랫동안 유지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적 성취도 탁월해서 로마 제국이 사라지고 천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로마의 영향력은 세계 곳곳에 남아있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강력한 로마 제국도 천 년의 역사 속에서 적지 않은 위기를 겪습니다만
곽한영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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