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게 적을 때 성과를 내는 마윈의 3가지 전략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몇 년 지나면 베이징이 나한테 이러지 못할 거야. 몇 년 후에는 모두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될 거야” 1995년 겨울, 중국 베이징에서 남부 항저우로 떠나는 고속버스 창문에 얼굴을 기댄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내뱉은 말입니다. 그 몇 개월 전 마윈은 중국 최초의 상업 인터넷 사이트인 '차이나페이지'를 개설하고 자신의 고향인 항저우에서 막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호텔, 수출 업체, 지방정부 기관 등 해외 고객에게 자신들을 알릴 필요가 있는 곳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회사였죠. 처음엔 회사에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개발 인력도 없어서 마윈과 회사 동료들이 일감을 따오면 그 내용을 미국 시애틀에 있는 협력사에 보내 홈페이지를 제작한 뒤 돈을 나눠 가졌습니다. 영어 강사 출신으로 영어를 원어민만큼 잘하는 마윈이 홈페이지에 들어갈 내용을 영어로 작성한 뒤 사진과 함께 미국 시애틀에 국제 우편으로 보내면 미국인 개발자들이 이에 따라 홈페이지를 만드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원시적’인 방식이었죠. 오늘날에는 한 해에 63조원가량의 매출(2018년 기준‧3768억 위안)을 올리고, 매년 11월 11일 열리는 온라인 세일 이벤트인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엔 자사 쇼핑몰에서 하루에 약 44조원(2019년 기준‧2684억위안) 어치의 상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IT기업이지만 그 시작과 전신은 이처럼 보잘것없었던 건데요. 1995년의 '차이나페이지'를 보고 지금의 알리바바를 그릴 수 있었던 사람은 마윈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1995년 가을 그는 베이징에 있는 중앙정부 부처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서 홈페이지 주문을 수주하고, 자기 회사를 알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베이징으로 올라옵니다. 항저우에서 지방정부 홈페이지를 성공적으로 만든 덕에 지역 신문에도 연달아 소개되는 등 나름대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수도 베이징에 진출해 사업을 키우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는 “중국의 야후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의 중앙 부처 공무원들과 공산당 간부들에게 마윈은 인터넷이라는 수상쩍은 물건을 들고 찾아온 사기꾼 혹은 잘 봐줘봤자 잡상인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이야 ‘중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당시만 해도 베이징에서 마윈은 작고 볼품없는 ‘촌놈’으로 보였습니다. 중국 최초의 상업용 웹사이트인 '차이나페이지'가 만들어진 게 불과 몇 달 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죠. 결국 486 노트북 한 대와 홍보자료 한 다발을 들고 큰 꿈에 부풀어 올라왔던 마윈은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요. 마윈은 훗날 이 시절을 떠올리며 “베이징을 떠도는 동안 맨바닥에서 잠을 잘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