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떠나는 도시' 부산의 창업생태계를 살리는 방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양경준님의 기고입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은 흥남에서 평화롭게 살던 덕수의 가족이 한국전쟁 발발로 피난선을 타고 부산에 들어온 뒤 고모가 살고 있는 국제시장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국제시장은 광복 이후 부산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으로 원래는 도떼기시장으로 불렸습니다. 처음에 공터였던 이곳은 광복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인들의 물건과 귀국한 해외동포들이 가져온 물건을 거래할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다 1948년에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자유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50년에는 부산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의 물건까지 흘러들어오면서 국제시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미군부대 군수물자, 해외 밀수품, 해외 양품 거래로 확대되면서 호황을 누렸습니다. 부산의 역사는 '국제시장 (international market)'의 역사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국제시장이 없었다면 부산은 오늘의 부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산에는 크게 두 번의 국제시장이 열렸는데 첫 번째는 조선시대입니다. 역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려 말에 왜구는 한반도의 동남해안을 끊임없이 노략질했는데 국가 존망에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그 폐해가 심했습니다. 고려에 이어 한반도의 패권을 잡은 조선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을 외교 정책으로 삼았는데 1418년(세종 1년) 대마도 제3차 정벌로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단절된 이후 대마도주가 교역을 정상화해 줄 것을 거듭 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