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기존 투자자보다 불리해야 하나요?".. 새 벤처투자 표준계약서의 딜레마
*이 글은 외부 필자인 안희철님의 기고입니다. 지난 6월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가 발표한 벤처투자 표준투자계약서는 반가운 변화예요. 그런데 스타트업 투자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면, 좋은 계약서를 만드는 일과 그 계약서가 실제 시장의 "표준"이 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답니다. 왜 그럴까요? 스타트업이 시드 투자를 받고, 프리A와 시리즈A를 지나 시리즈B와 C까지 성장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앞선 투자계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시드 투자자에게 부여했던 상환권과 전환권이 남아 있고, 시리즈A 투자자에게 부여했던 사전동의권도 남아 있으며, 각 투자 라운드에서 발행한 종류주식의 조건도 정관과 등기에 계속 남아 있지요. 그렇게 몇 년 동안 계약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회사의 자본구조에는 일종의 "지층"이 만들어져요. 회사와 새로운 투자자가 지금 아무리 합리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도, 이미 그 아래에 깔려 있는 과거의 계약조건을 무시하고 새로운 구조만 적용하기는 상당히 어렵답니다. 그래서 이번 표준투자계약서를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됐어요. 하나는 "우리나라 벤처투자계약이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라는 생각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이 좋은 계약서를 실제 현장에 정착시키는 일이 계약서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었지요. 이번 표준투자계약서는 분명 이전보다 좋아졌어요 이번 개편의 방향은 비교적 선명해요. 기존의 복잡한 32종 통합형 계약서를 투자계약서(SPA)와 주주간계약서(SHA)로 나누고, 계약 유형을 5종으로 단순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