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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기자
경제신문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뒤 9년간 일하다, 경제/금융 콘텐츠 제작기업 '레드브릭 콘텐츠'를 창업해 3년 동안 운영했습니다.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등 몇 권의 책을 썼습니다. 메일 주소는 sean@outstanding.kr 입니다.
극한상황에서도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네이비씰의 '리더십 3원칙'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미국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씰(NAVY SEALS)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특수부대입니다. 영화, 드라마, 게임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부대라 군사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분들이더라도 그 이름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명령으로 창설된 네이비씰은 막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반세기 넘게 수많은 임무를 완수해온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씰(SEALS)이라는 부대 이름은 바다(SEa), 하늘(Air), 땅(Land)의 약자를 합쳐서 만든 이름인데요. 육해공 어디서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부대라는 뜻입니다. 네이비씰이 완수했던 가장 대표적인 작전으로는 2011년 5월,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을 들 수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네이비씰 대원의 헬멧에 달린 캠코더를 통해 빈 라덴의 최후를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최강의 전투력을 갖춘 특수부대인 만큼 네이비씰은 일반 정규군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임무에 주로 투입되는데요. 이라크에서 미군과 반군 게릴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2006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이라크에서 반군의 저항이 가장 격렬했던 지역은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州)의 주도인 라마디였습니다. 반군의 본거지로 꼽히는 인구 40만여 명의 도시였죠. 도시의 대부분을 반군이 장악하고 있었던 곳입니다.
'빅마트'의 성쇠에서 배우는 약자가 강자와 싸우는 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한때 잘 나가던 회사가 무너진 이유를 가장 생생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이는 역시 회사를 창업해 직접 이끌었던 오너 CEO일 텐데요. 하지만 망한 회사의 창업자로부터 직접 실패 원인에 대한 설명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큰 규모로 사업을 일궜다가 무너져버린 창업자들 중 많은 분들이 다시 일어서지 못한 채 공개적인 자리에 나서지 않고 있고, 어렵게 이런 분들을 만난다고 해도 고통스러웠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꺼리기 때문입니다. 언론에서 실패한 기업과 기업인들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루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하상용 로컬푸드 빅마트 대표의 사례는 아웃스탠딩 독자 분들께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그가 서른네 살이던 1995년에 광주에서 창업한 대형마트 유통업체인 빅마트는 2000년대 중반 연매출 2000여억원에 직원 3000명 (협력업체 파견직원 2000명 포함) 규모까지 성장합니다. 전국 유통업계 순위 7위에 해당하는 몸집이었죠. 자본금 5000만원을 갖고 시작한 회사가 10여 년 만에 이 정도까지 성장했으니 그 성장 속도가 매우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빅마트는 광주‧전남 지역을 터전으로 하는 업체였는데요. 해태, 나산, 금광, 거평 등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계열 대형마트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광주‧전남 지역 유통업계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빅마트는 설립된 지 12년 만에 무너져 내렸는데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라는 전국구 대형마트들이 빅마트의 근거지인 광주‧전남 지역으로 잇따라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들과 맞서기 위해 점포를 무리하게 늘렸던 게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하상용 대표를 모두 세 차례 만났고 그가 출간한 ‘다시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이란 책도 읽었는데요.
후지필름의 부활로 보는 '좋은 전략’을 만드는 4단계 기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기업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내다 팔던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일입니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자신과 자신의 경쟁자들이 만드는 상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을 말하죠. 수많은 기업과 이들이 생산한 상품, 그리고 상품을 구매하던 소비자들로 붐비던 시장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거의 사라져버린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사진 필름 시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필름 판매량은 곤두박질쳤고 결국 필름 제조업체들의 도산으로 이어졌습니다. 2000년 그 규모가 정점을 찍은 전 세계 사진 필름 시장은 이후 10년간 급속하게 시장 규모가 쪼그라들었습니다. 매년 20~30%씩 규모가 줄어든 탓에 2010년의 필름 시장 규모는 2000년의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전 세계 필름 업계 1위로 군림하던 미국의 코닥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견뎌낼 수 없었는데요. 코닥은 2012년 1월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며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런데 코닥이 무너지던 그해 일본의 필름 제조업체 후지필름이 거둔 실적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후지필름의 2012년 매출은 22조1470억 원이었습니다. 사진 필름 제조·판매라는 주력 사업이 무너져버리는 극심한 위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낸 덕분에 20조 원이 넘는 매출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죠. 아직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세계 경제가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했던 시기였고 또 일본 기업들이 엔고(일본 엔화 가치가 높아져 일본 기업이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 때문에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기에 후지필름의 실적은 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수십 년간 필름업계 1위로 군림하던 코닥은 파산했는데 어떻게 만년 2위 후지필름은 살아남아 계속 성장할 수 있었을까?’
'영단기·공단기 회사'의 지식 플랫폼 '커넥츠'를 주목하는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콘텐츠 업계, 그중에서도 깊이 있는 정보를 다루는 지식 콘텐츠 업계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월 정기 구독 모델을 바탕으로 구독자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부쩍 늘어났는데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아웃스탠딩이나 퍼블리, 북저널리즘 같은 서비스들이 대표적인 지식 콘텐츠 업체입니다. 포털과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뉴스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들입니다. 이 서비스들은 주로 자기 계발에 대한 관심이 높고,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무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25~45세 사이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한 달에 1만~2만 원 정도는 기꺼이 지갑에서 꺼낼 수 있는 독자층이죠. (참조 - 퍼블리 vs. 스리체어스… 출판의 영역을 넓힌 루키들) 성장하는 지식 콘텐츠 시장 영상과 음원 시장을 중심으로 정기 구독 모델이 널리 자리 잡으면서 매달 돈을 내고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에 사람들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주로 텍스트 형태로 제공되는 지식 콘텐츠에 대한 소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인들의 자기 계발 욕구도 계속 높아지고 있고요. 더 이상 대학에서 배웠던 지식만 갖고는 직장 생활을 해나갈 수 없게 됐으니까요. 과거보다 회사를 옮기는 일도 훨씬 잦아졌고,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만 하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오프라인 행사, 유명 연사 없이 흥행에 성공하는 방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은 ‘내 생각이 결국 글에만 머문다’는 건데요. 제가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들의 경영 철학이나 효율적인 경영 기법을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그 내용들은 결국 기사에만 담길 뿐입니다. 제가 배운 지식들을 실제 비즈니스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힘들죠.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실천으로 옮길 기회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기자 생활을 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은데요. 다행히 지난 2년간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제가 배운 지식을 실전 비즈니스에 활용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인 저는 2016년 말부터 한국경제신문과 네이버의 합작법인인 네이버FARM판에 파견 와서 일하고 있는데요. 이곳은 네이버 포털 안에서 농식품 관련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 기업입니다. 이곳에 와서 일한 2년 7개월 동안 편집국에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다양한 비즈니스 경험을 쌓을 수 있었는데요.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유료 농업 포럼을 기획해서 2년간 운영한 일이었습니다. 포럼이라는 상품을 기획해서 마케팅하고 판매해 이익을 내는 사업이죠. 이번 글은 지난 2년 동안 제가 <팜 테크 포럼>이라는 오프라인 행사 상품을 기획, 판매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내 보겠습니다. 정부와 기업 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는 유료 농업 포럼이라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내놓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아웃스탠딩> 기고 글을 통해 여러 차례 설명했던 ‘블루오션(Blue Ocean)’ 전략을 어떻게 실제 업무에 적용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지식을 팔아 돈을 버는 방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중국 속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일은 남의 지갑에서 돈을 빼오는 일이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의 머릿속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는 일이다” 그런데 이 속담을 찬찬히 뜯어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따로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바로 ‘남의 머릿속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는 일로 돈을 버는 일’입니다. 지식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이 일은 제가 지난 2년여 동안 계속해서 고민해온 일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 즉 콘텐츠를 팔아서 돈을 버는 방법을 풀어내 보겠습니다. 아웃스탠딩 독자님 중에는 콘텐츠‧미디어 업계에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을 텐데요. 콘텐츠 분야 기업에 계신 분들 그리고 회사를 알리고 제품을 마케팅하기 위한 콘텐츠 제작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하시는 분들께 특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신문사 기자인 제가 왜 ‘지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지식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부터 설명드려야겠죠. 저는 한국경제신문 기자인데요. 2016년 말부터 한국경제신문과 네이버가 합작 투자해서 만든 네이버FARM판에 파견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FARM판은 네이버 포털 안에서 농업과 식품산업, 귀농귀촌, 도시농업 등 농식품 분야에 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워런 버핏이 선택한 '전용기 공유 회사' 넷제츠 이야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세계적인 부호입니다. 2019년 3월 포브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825억 달러(97조여 원)에 달합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가는 부자입니다. 97조 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그는 동시에 ‘짠돌이’로도 유명합니다. 그에 대해 소개할 때면 항상 따라오는 일화들이 몇 개 있습니다. ‘60년 전에 구입한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12달러의 이발비를 내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다’ ‘20년 넘게 도요타의 캠리 자동차를 스스로 몰고 다닌다’ 엄청난 재력을 갖고 있지만 검소하게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들인데요. 이처럼 절약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였기에 1989년 버크셔 해서웨이에서 처음으로 회사 전용 비행기를 샀을 때 ‘Indefensible’(도덕적으로 변명할 수가 없다는 뜻)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이해가 됩니다. 회사 일을 위해 전용 비행기를 구입하긴 했지만 이만큼 큰 낭비가 없다는 뜻이었는데요. 사실 버핏은 이전에 다른 기업의 경영진들이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걸 비판한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몇 년 뒤 버크셔 해서웨이에서 더 큰 전용 비행기를 구입하자 이때는 ‘indispensable’(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이라는 뜻)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몇 년간 전용기를 타보니 자기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니는 게 얼마나 편하고, 또 업무에 도움이 되는지 직접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1998년엔 전용기 공유 회사 넷제츠를 인수합니다.
'거울, 남자, 화장'을 없애 새 피트니스 시장을 개척한 커브스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서 커브스(Curves)라는 프랜차이즈 피트니스 센터를 알고 있는 분이 계시나요? 아마 여성분들 중에서는 이곳의 이름을 들어보신 분들이 그래도 꽤 계실 거 같고, 남성분들 중에서는 아는 분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여성들만 운동할 수 있는 여성 전용 피트니스 센터이기 때문이죠. 1992년 미국 텍사스주 할링겐에서 게리 헤이븐과 다이앤 헤이븐 부부가 1호점 문을 열면서 시작된 커브스는 약 30년 만에 전 세계 90개국으로 뻗어나갔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318개 지점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IT산업과 스타트업에 대해서 다루는 아웃스탠딩에서 왜 갑자기 여성 전용 헬스클럽 이야기를 하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거 같은데요. 제가 처음 커브스란 피트니스 센터를 알게 된 건 경제경영 베스트셀러 <블루오션 전략>을 읽으면서였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커브스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죠. 이 책에는 새로운 시도로 기존에 없던 신시장을 개척해낸 많은 기업들의 사례가 나와있는데요. 커브스도 그중 한 곳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커브스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비고객 집단을 관찰한 뒤 그동안 내 물건을 사지 않던 이들에게 내 상품을 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비고객을 고객으로 만든다는 건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창출한단 말과 같습니다. <블루오션 전략>에서 말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기법은 모두 여섯 가지입니다. 1. 산업 내 전략별 그룹들을 관찰하라 2. 대안 사업을 관찰하라 3. 구매자 체인을 관찰하라 4. 보완적 제품 및 서비스를 관찰하라 5.구매자를 끌어당기는 기능적 또는 감성적 매력을 관찰하라 6. 시대의 흐름을 관찰하라
'변방의 와인' 옐로우 테일은 어떻게 시장을 재정의했나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평소 와인을 즐기시지 않는 분들이더라도 옐로우 테일(yellow tail)이란 와인 브랜드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마셔보신 분도 적지 않으실 겁니다. yellow tail이라고 소문자로 적힌 브랜드 아래 캥거루 한 마리가 뛰노는 오스트레일리아산 와인이죠. 옐로우 테일은 오스트레일리아 와인 수출량의 20%를 차지하는 국가 대표 와인인데요. 전 세계 50여 개 국가에 수출되고 있죠. 옐로우 테일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가성비입니다. 한국에서도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750ml 한 병에 1만원대 가격으로 살 수 있죠. 와인은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깬 저렴한 가격이죠. 맛도 괜찮은 편입니다. 와인의 깊은 맛을 음미할 줄 모르는 와인 문외한이더라도 부담 없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옐로우 테일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와인 브랜드입니다. 와인 시장 전문 조사기관인 ‘와인 인텔리전스’가 지난 3월 발표한 ‘글로벌 와인 브랜드 파워 인덱스 2019’ 조사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와인 브랜드1위로 뽑혔죠. 전 세계 20개국에 있는 2만 명의 와인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입니다. 미국 와인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굳건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류 전문매체 더드링크비즈니스에 따르면 옐로우 테일은 2017년에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와인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옐로우 테일 와인은 언제부터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걸까요?
손정의가 '료마'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은 3가지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오늘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을 비롯한 수많은 일본인들이 사카모토 료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835년 일본 남서부에 자리 잡은 도사 번(오늘날의 고치 현)에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난 료마는 메이지유신 직전인 1867년 자객들의 칼을 맞고 숨을 거둡니다.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건데요. 그가 검술 수련을 위해 난생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에도(지금의 도쿄)로 향했던 건 1853년입니다. 그리고 14년 뒤 그는 교토에서 숨을 거둡니다.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을 해냈길래 그는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걸까요? ‘최초의 일본인’이라는 호칭과 함께 말이죠. 손정의를 매료시킨 인물 제가 처음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건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아웃스탠딩>에 처음 기고한 글이 ‘손정의가 사업 초기 사업을 급성장시킨 전략’을 다룬 글이었는데요. (참조 – 창업자 손정의가 사업을 급성장시킨 3가지 전략)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손정의에 대한 여러 자료를 읽어봤습니다. 그가 중앙일보에 직접 기고했던 20건의 글도 읽었고요. 그에 대해서 다룬 책도 여러 권 읽어봤습니다. 그가 국내 언론과 했던 인터뷰 기사들은 물론이고요.
스타트업이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건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필립 피셔는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그를 가리켜 “필립 피셔는 오늘의 나를 만든 스승이다”라고 말했는데요. 그가 이처럼 유명한 투자자로 꼽히는 건 1950년대에 처음으로 ‘성장주(Growth stocks)’라는 개념을 소개해 이후 월 스트리트의 투자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그가 창안한 성장주 투자란 아주 쉽게 말하면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는 초창기 기업에 투자한 뒤 그 기업이 충분히 커나갈 때까지 장기간 기다리는 전략을 말합니다. 잠재력이 높은 초기 기업에 투자한다는 면에서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벤처캐피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필립 피셔의 투자 철학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는 관찰력,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과감하게 밀고나가는 결단력이란 자질들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요. 워렌 버핏이나 레이 달리오 같은 유명 투자자들의 책을 보면 재테크 서적이라기보다 철학 서적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필립 피셔가 쓴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게 1958년이니까 한국에선 이승만 정부가 집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온 지 61년이나 됐지만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널리 읽힙니다.
직장인으로 일주일에 하루만 활용해 6개 채널을 운영한 노하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매출은 최대로 비용은 최소로” 저는 지금껏 아웃스탠딩에 기고한 글들을 통해 비용 절감을 통해 고수익 경영을 이뤄낸 기업들의 사례를 자주 설명해왔는데요. 50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보지 않고 회사를 경영한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의 아메바 경영, (참조 - 준비 없는 창업자가 경영의 신이 된 비결 ‘아메바 경영’) 상품 기획 단계부터 원가 절감 방안을 연구하는 도요타 생산방식(TPS) 등이 그런 사례들이었습니다. (참조 - “가격은 회사가 정하는 게 아니다” 도요타가 이익을 만드는 비결) 제가 비용 절감에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를 연달아 설명한 건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돈, 시간, 노력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선 회사가 아닌 개인 창작자와 미디어‧콘텐츠 스타트업들에 적용할 수 있는 비용 절감 방안을 다뤄보겠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하루만 활용해서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이란 이름의 블로그와 팟캐스트, <홍선표의 고급지식>이란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동시에 운영할 수 있었던 노하우와 이 콘텐츠를 바탕으로 책을 출간해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경험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이버가 창작자들에게 돈을 주기 시작한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저는 삼성SDS 이해진 과장이라고 합니다. 사내 프로젝트 담당자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995년 삼성전자 본사 기획실을 찾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꺼낸 첫마디였습니다. 이 무렵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추진하던 인터넷 서비스 개발 프로젝트가 상부의 지시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직접 본사 기획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프로젝트 중단을 막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검색엔진과 콘텐츠를 앞세워 일단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으면 반드시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그가 설득을 위해 내세운 논리였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시는 분이라면 계열사 직원이 회사 방침을 거스르기 위해서 본사 기획실을 불쑥 찾아간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잘 아실 텐데요. 그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겠지만 승부수를 던졌고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졌습니다. 이해진 창업자가 이끌던 팀은 삼성SDS의 1호 사내벤처로 뽑히면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이 팀으로부터 오늘날의 네이버가 탄생하게 되는데요. 애초에 이해진 창업자가 구상했던 대로 네이버는 검색엔진에 다양한 콘텐츠를 붙여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이용자를 늘려나갔고 오늘날과 같은 거대 IT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마케팅 명저 3권, 상황에 따라 제대로 활용하는 법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최근 마케팅 분야 책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컨테이저스> <포지셔닝> <보랏빛 소가 온다> 이렇게 세 권인데요. 다들 워낙에 유명한 책들이라 제목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꽤 될 겁니다. 매주 마케팅과 입소문 전략에 대해 공부하는 수업을 듣다 보니 강의에서 교재로 나눠주는 책들을 꾸준히 읽게 된 건데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약 30년간 마케팅 전략에 대해 연구하셨던 신현암 팩토리8 대표님의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경제신문과 네이버가 합작해서 만든 네이버FARM이라는 회사에서 2년 4개월째 파견 근무 중입니다. 이곳에서 네이버 주제판 중 하나인 FARM판에 들어가는 콘텐츠들을 제작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FARM이라는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농업, 귀농귀촌, 도시농업, 식품산업 등 농식품 분야 주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입니다. (참조 - 성공한 농업인들에게 배우는 경영 비결 3가지) 이곳에서 하는 일은 신문사 편집국 취재기자의 업무보다 영역이 더 넓습니다. 인터뷰이를 만나서 인터뷰하거나 농식품 관련 이슈들을 취재해서 기사를 쓰는 건 똑같지만 그 외에도 다른 일들이 많은데요. 지난해엔 <팜 테크 포럼>이란 이름으로 유료 농업 포럼을 열기도 했고요. 또 <리치 파머>란 이름으로 그동안 나갔던 콘텐츠들을 모아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가격은 회사가 정하는 게 아니다" 도요타가 이익을 만드는 비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 일본의 자동차 제조업체 도요타의 경영 전략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따라붙는 표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원가를 절감하려는 도요타의 집념이 마치 물기 하나 없는 마른 수건에서 한 방울의 물방울이라도 짜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모습 같다는 뜻에서 붙은 말입니다. 원가 절감을 향한 끝없는 노력 덕분에 도요타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 말 그대로 도요타 생산 방식 (TPS‧Toyota Production System)은 전 세계 제조업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고유 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해 자동차를 조립 생산한 미국 포드자동차의 생산 방식이 포드주의‧포디즘(Fordism)이란 이름으로 공장식 대량생산 시스템 그 자체를 가리키게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도요타는 상품 기획, 설계, 생산, 유통, 판매, 사후관리(After Servicie) 등 모든 사업 과정에 걸쳐서 어떻게든 원가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이 같은 도요타 생산 방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인 2008년 무렵만 해도 5조 원에 달하는 연간 적자와 1000만 대 규모의 초대형 리콜 사태로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에 몰렸던 도요타가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다시 살아난 정도를 넘어서 역대 최대 매출과 판매량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2018년 전반기(4~9월, 일본은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를 회계연도로 삼기 때문에 4~9월이 그 해의 전반기가 됨) 도요타가 거둔 매출은 14조 6740억 엔(약 149조), 판매한 차량은 529만 3000대였습니다. 둘 다 사상 최고 실적이었습니다. 영업이익 역시 일 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15% 늘어나 1조 2681억 엔(약 12조 9000억 원)을 벌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8.6%였습니다. 이처럼 도요타가 제2의 전성기에 들어서자 자연스레 TPS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기업도 많아졌습니다.
성공한 농업인들에게 배우는 경영 비결 3가지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워낙 유명한 구절이라 많은 분들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보지는 않으셨어도 이 문장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말은 가정뿐 아니라 사업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경제신문기자로 7년간 일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성장하고 또 망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요. 기업이 망하는 이유는 제각각 다릅니다. 실패한 기업의 수만큼이나 많은 실패의 이유가 존재합니다. 이에 비해 시장에 자리 잡고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들은 어떤 업계인지 상관없이 대게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요. 몇 가지만 예를 들면 효율적으로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경영자, 끊임없는 비용 절감을 통해 만들어낸 높은 이익률, 경쟁업체가 쉽게 도전하기 힘든 브랜드 파워, 경쟁자와 차별화된 높은 퀄리티의 상품과 서비스입니다. 성공한 농민들의 공통점 이점은 농업 분야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성공한 농민이나 농식품 기업을 찾아가 보면 앞서 말한 공통점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기본적인 공식은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저는 2016년 말부터 지금까지 2년 4개월 동안 네이버FARM판에 와서 파견 근무 중입니다.
준비 없는 창업자가 경영의 신이 된 비결 ‘아메바 경영’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50년 흑자의 비결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 회장은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혼다그룹 창업자와 함께 일본의 3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세 명 가운데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인물이죠. 1959년 회사를 창업한 이후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보지 않고 매년 흑자를 냈다는 사실이 그를 경영의 신이라 불리게 만들었습니다. 일본 교토에 본사를 둔 교세라는 반도체 부품, 전자 부품, 파인 세라믹 부품 등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쉽게 전자 부품 제조업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 세계에 7만 5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매출 16조 원(2017년‧연결 재무제표 기준) 규모의 회사입니다. 지금은 이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교세라지만 처음엔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했습니다. 교토의 한 초라한 창고 건물에서 자신을 믿고 원래 다니던 회사를 함께 뛰쳐나온 동료 일곱 명과 모인 게 회사의 시작이었죠. 사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오랜 시간 동안 계획하고 준비해서 창업에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니던 회사의 상사가 자신을 중요한 개발 프로젝트에서 빼버리자 “아,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저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사표를 던진 것이었죠.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디지털 성과'를 낼 기회가 있었다?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언론이 어떤 기업의 실적 발표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돈을 아주 많이 벌었거나 아니면 아주 크게 손해를 봤을 때죠. 지난 2월 초 전 세계 언론은 미국 신문사인 뉴욕타임스의 2018년 실적 발표에 크게 주목했는데요. 그 이유는 뉴욕타임스가 2018년 한 해 동안 큰돈을 벌었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실적 개선 뉴욕타임스는 <더 뉴욕 타임스 컴퍼니>라는 미디어 그룹에 속해있는데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18개 신문사를 갖고 있는 이 회사는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있습니다. 그리고 실적 발표가 있던 날 이 회사의 주가는 12%나 올라서 2005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주가(30.07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대체 이날 실적 발표에서 어떤 숫자들이 나왔길래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주가가 껑충 뛰었던 걸까요? <더 뉴욕 타임스 컴퍼니>의 2018년 매출은 17억 5000만 달러(약 1조 9682억 원), 영업이익은 1억 9016만 달러(약 2139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2017년(16억 7563만 달러)에 비해 4.4%, 늘어났고 영업이익도 2017년(1억 7659만 달러)에 비해 7.7% 늘어났습니다. 2016년에는 매출은 15억 5534만 달러(약 1조 7497원), 영업이익은 1억 160만 달러(약 1143억 원)였습니다.
첫 역성장 위기 때 MUJI가 실행한 3가지 대책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일본의 생활용품 전문점 무인양품(한국명 무지‧MUJI)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잘 쌓아 올린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무인양품의 뜻은 ‘도장이 찍혀있지 않은(無印‧브랜드가 없다는 뜻) 좋은 품질의 상품(良品)’인데요. 이 말처럼 무인양품은 처음 설립된 1980년 이후 지금껏 불필요한 디자인과 기능을 없앤 소박하고 정갈한 상품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무인양품의 인기는 높은데요. 2017년 무인양품은 한국 시장에서 매출액 1095억 원을 거둡니다. 일 년 전인 2016년에 비해 39% 늘었습니다. 2004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한 지 13년 만에 100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한 것이죠. 같은 해 영업이익 역시 58억 원으로 그 일 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졌습니다. 2018년 기준 무인양품은 일본에 454개 매장, 해외에 474개 매장을 두고 있습니다. 2017년에 일본 무인양품이 거둔 매출은 3795억 5100만 엔(약 3조 8000억 원)에 달합니다. 무인양품은 오늘날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에서 착실하게 성장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로 탄탄히 자리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위기가 없었을 수는 없는데요. 2001년에는 매출과 이익이 설립 이후 처음으로 감소하면서 38억 엔(현재 환율 기준 약 380억 원)의 적자를 보면서 큰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 추락하던 무인양품의 구원투수로 등판 회사를 위기에서 구한 마쓰이 타다미쓰 전 무인양품 사장의 사례를 다뤄봅니다.
작은 회사일수록 CEO가 직접 직원들을 교육해야 하는 4가지 이유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글입니다.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여 같은 직원들로 더 많은 수익을 낸다.’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든 직원 두세 명의 스타트업이든 기업을 이끌고 있는 경영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입니다.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래서 기업은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직원이 더 큰 생산성을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직무 역량을 높이거나 더 큰 동기부여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선 직원을 교육시키는 수밖에 없죠. 대기업들이 많은 예산을 들여 '○○ 인재개발원'과 같은 사내 교육 전담기관을 운영하고,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사기업 할 것 없이 임원급 직원들에게 강도 높은 리더십 교육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얼마 전 기업체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직관리‧성과관리‧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연 업체의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웬만한 기업들의 경우 임원 교육을 위해 시간당 수백만 원의 강사료를 지급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직원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이죠. <아웃스탠딩> 독자 중 많은 분들은 신생 기업을 경영하거나 창업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들일 텐데요. 대기업들이 직원 교육에 큰 투자를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그건 큰 회사들이나 하는 이야기지 우리 같이 작은 회사는 그럴 시간도 돈도 없어" "스타트업처럼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해야 하는 곳에서는 직무 교육이 별 효과가 없어"
창업자 손정의가 사업을 급성장시킨 3가지 전략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글입니다.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사람 중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창업자만큼 극적인 삶을 산 사람도 드물 겁니다. 1957년 일본 사가현(賢) 도스시(市)에 있는 무허가 판잣집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돼지에게 먹일 음식 찌꺼기를 나르던 리어카 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년이 60여년 뒤 재산 219억 달러(약 28조8000억 원)의 일본 최고 부호가 됐으니까요. (포브스, 2018년 조사 기준) (참조 - 손정의 회장, 2년 연속 일본 최고부호) 그가 이끄는 소프트뱅크 그룹이 2017년 거둔 매출은 9조 1587억 엔, 우리 돈으로 100조 원이 넘습니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애플 등과 함께 설립해 전 세계 유망 기업들에 투자하는 비전펀드가 굴리는 투자금은 1000억 달러, 약 110조 원에 달합니다.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기에 뉴스 기사 등 그에 대해서 다룬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2000년에 창업한 지 1년밖에 안 된 알리바바의 사장 마윈을 만나 6분 만에 200억 원 투자를 결정했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결핵에 걸려 쓰러졌던 아버지를 뒤로 하고 홀로 미국 유학길에 떠났다’ ‘닷컴 버블 당시 주가가 100분의 1로 떨어졌지만 여섯 시간의 주주총회 끝에 결국 주주들을 감동시켰다’ 이런 에피소드들을 읽으면 손정의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성공가도를 달여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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