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의 딜레마 '에룸의 법칙'.. AI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은 외부 필자인 박상현님의 기고입니다. 에룸의 법칙 (Eroom's Law)이라는 게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나타난 현상을 설명하는 이 법칙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약 개발은 느려지고, 개발에 드는 비용은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생명공학과 화학 기술은 물론이고 컴퓨터 기반의 약물 설계 기술이 발전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반도체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약 2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과 반대죠. 지난 수십 년 동안 IT업계와 제약업계는 상반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두 법칙이 산업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줍니다. 반도체 집적도가 늘면서 성능 대비 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새로운 실험을 반복하는 비용이 낮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나타나서 성공하고, 기존의 플레이어들을 위협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납니다. 제약업은 반대로 진행했습니다. 기술 자체는 발전했어도 신약의 성공 확률이 낮아지면서 업계는 임상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제약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의 약이 나오기까지 10~15년 이상 걸린다면 그때까지 투자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의 검증된 약을 개량하거나, 새로운 용도를 찾는 등 리스크를 회피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됩니다.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실데나필이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비아그라'로,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오젬픽(GLP-1)이 '위고비'로 팔리는 것도 그런 사례입니다. 제약사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 장벽을 유지하면서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