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의 역사는 어떻게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나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19세기 말의 테일러주의, 그리고 20세기 초의 포드주의는 전 세계에 대량생산이라는 생산양식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플랜테이션부터 포드주의까지 대량생산의 역사에 대해서는 이전에 기고한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참조 - 대량생산이 진정으로 탄생시킨 것) 그 덕분에 테일러와 포드의 철학은 미국을 넘어 유럽, 그리고 더 나아가 소련에까지 전파되죠. 사실 소련이야말로 1920년대 이후 중공업 분야에서의 대량생산과 생산효율 향상을 가장 극적으로 체감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소련은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가 낳은 이란성 쌍둥이라고도 볼 수 있죠. 전쟁과 대량생산, 그리고 노조의 힘 이 대량생산체제가 가장 빛을 발했던 시점은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미국과 소련은 둘 다 전시상황하에서 극한의 생산효율을 추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대량생산을 통해 군수물자를 엄청나게 찍어댔습니다. 대표적인 게 항공모함이죠.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에 태평양 전선에 투입한 미군의 항모는 단 3대뿐이었지만 이후 2차 대전 종료까지 미군이 건조한 항모 수는 총 151척입니다. 그중에서 정규 항공모함인 에식스급은 무려 24척에 달합니다. 전차의 경우, 미국 전역에 있는 17개의 전차 공장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 디트로이트 공장에서만 2만2234대를 생산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