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가 국내 1위 증권사를 키워낸 4가지 비결
*이 글은 외부 필자인 홍선표님의 기고입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을 한국 금융산업 역사상 가장 큰 성취를 이뤄낸 개인이라고 부르는 건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1997년, 서른아홉 살의 나이에 직원 9명과 함께 창업한 회사를 24년 만에 1만 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국내 19위의 대기업 그룹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으로 키워낸 인물이니까요. 주력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굴리는 운용자산은 2020년 기준 132조원으로 10년 넘게 국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의 2020년 매출은 16조8905억원, 영업이익은 1조1047억원에 달합니다. 국내 증권사 중에서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둔 곳이 나온 건 미래에셋이 처음입니다. 국내 주요 금융그룹 대부분이 애초부터 대규모 자본의 주도로 설립된 것과 달리 미래에셋은 박현주 개인의 역량과 브랜드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는데요. 그를 뛰어난 투자자이면서 동시에 특출난 창업자‧사업가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증권업계 1등 영업맨이던 서른아홉 살 박현주가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창업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4가지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현주 회장이라고 해서 항상 시장을 이기면서 미래에셋에 돈을 맡긴 고객들의 돈을 불려줬던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1999년에 설정된 ‘박현주 2호 펀드’는 닷컴버블 붕괴로 인한 증시 폭락으로 투자자들에 투자원금에 손실을 입혔고요. 2007년에 설립된 ‘인사이트 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1년 만에 마이너스 53.3%라는 참담한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주식시장이 회복되며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도 설정 이후 기준 127%(2021년 3월)를 기록하고 있지만 2008년 당시에는 무려 400만명이 넘는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 채 펀드를 깨야만 했습니다. 인사이트 펀드는 2011년에도 한 해 동안 마이너스 17%라는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고 결국 박현주 회장은 일간지 광고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