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었기 때문에 클 수 있었던 남양유업 이야기 (1964-1988)
*이 글은 외부 필자인 김영준님의 기고입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전 대표를 비롯한 오너 일가가 보유 지분을 한앤컴퍼니에 3100억원에 넘기면서 남양유업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분명 이 기업은 2013년의 대리점 갑질 논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가공 업계의 대표 기업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죠. 사실 객관적으로 남양유업의 상품 품질은 괜찮은 편입니다. 소비자들이 남양유업 불매운동을 벌인 이후로 개별 상품에 남양이란 이름을 지웠던 것은 바로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소비자들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소비한 상품들이 남양유업의 제품인 것을 알고 뒤늦게 불매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럼 한앤컴퍼니는 과연 브랜드 가치가 망가진 남양유업을 정상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남양유업이 어떻게 성장을 해오고 경쟁을 해왔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후발주자 1954년, 평안북도 출신의 고 홍두영 명예회장이 동생과 함께 남양상사라는 회사를 차려 비료 수입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비료사업은 산업이 농업뿐이던 상황에서 제법 유망한 사업이었죠. 이걸로 형제가 돈을 꽤 벌었습니다만 62년 화폐개혁으로 인해 계좌동결 조치가 취해지는데 이때 남양상사는 부도를 맞게 됩니다. 그런데 쫄딱 망한 건 아니었습니다. 63년은 정부의 낙농진흥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던 시기고 홍 명예회장은 이때 덴마크와 미국, 일본을 시찰하면서 분유란 아이템을 발굴했거든요. 당시는 매우 제한된 목적으로만 여권이 발급되었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사업을 접긴 했어도 해외를 사업차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자본과 인맥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64년에 남양유업을 설립하는데 당시 농림부의 외화배정추천에서 갓 설립된 남양유업이 시설투자 명목으로 15만달러를 배정받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